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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챙겨줘서 피곤” “장모님 엄살도 심하셔”

‘아들 위에 사위’ 시대

  • 입력 2015.05.18 00:00
  • 수정 2015.06.05 09:59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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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딸대학원 졸업식 왼쪽부터 큰딸, 이금순씨, 사위 안복열(42)씨. 앞줄 중앙은 작은딸.

“처음 만난 날 제가 사위 밥숟가락에 고기를 얹어줬어요. 그때 제가그렇게 자상하게 느껴졌다고 하더라구요.”그렇게 처음 만나 사위와 장모로 인연을 맺은 지 14년, 모자지간보다더 살가운 사이로 살아왔다. 장모 이금순(64) 씨는 “너무 챙겨서 피곤할 때도 있지만 아들 같은 사위 얻기가 어디 쉽냐”면서 “서울에 있지만이웃집에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이 씨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 장모가 “방문한다”는 언질만 던져놓으면 당장 티켓 예매에 들어간다. 서울역에 도착하
면 반드시 사위가 나와서 모신다. 사위 이름은 안복열(42) 씨. “택시 타고 가도 만 원밖에 안 나온다. 바쁜 데 왜 나왔느냐”고 하면 울상에 가까울 정도로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이씨가 이렇게 타박한다.“판사님이 그런 애 같은 표정을 지으면 어떡해. 누가 보면 어쩌려고.”
 

사위가 장모에게 “구구단 외워보세요!”


이 씨가 서울을 방문하면 말 그대로 축제 기간이다. 맛집 방문, 병원투어, 쇼핑까지 연일 가족 행사다.“사위가 평소에 여기 저기 먹으러 다니면서 맛있다 싶은 집을 골라놔요. 내가 서울에 오면 같이 가려고. 그것도 그냥 막 가는 것도 아니에요. 하루는 한식, 하루는 일식, 또 하루는 육류로 번갈아 먹여요. 균형을 맞춰야 된다면서.”한의원 방문도 필수 코스다. “귀찮”고 하면 ‘어떻게든 꼬드겨서’ 나서게 만든다. 문밖을 나서면 장모 백을 착 걸치고 손을 꼭 붙든다. “어디 도망 안 가네. 왜 이렇게 탁, 붙들어”하고 투정을 부리면 “어머니가너무 좋아서 그렇죠”하면서 애교를 떤다.저녁엔 구구단 숙제 검사를 받는다. 치매 예방에 좋다면서 사위가 내준 숙제다.“8단 한번 외워보세요.”줄줄 외고 난 뒤에 “자, 됐지?”하면 또 이렇게 주문한다.
“거꾸로 한번 외워보세요.”산책도 빼놓지 않는다. 하루만 쉬면 안 되겠냐고 투정을 부리면 “장모님이 건강해야 우리가 행복하다는 게 우리 집 가훈”이라면서 억지로라도 끌고 나간다.행여 아픈 기색이라도 보이면 비상사태다. 서울에서 보약이 될 만한음식을 바로 주문해서 대구로 부친다. 업체에서 “택배 배달이 안 되는제품”이라고 하면 “장모님이 너무 아파서 꼼짝도 못하신다”는 거짓말까지 보태서 음식을 내려 보낸다. 대구에 사는 둘째 사위역시 첫째 못잖다. 막내처럼 애교가 많지는 않지만 아프단 ‘정보’를 접하면 퀵으로장모가 즐기는 초밥과 곰국을 ‘쏜다.’“아무 일 없어도 전화를 그렇게 자주 해요. 서울 작은사위, 대구 큰사위 두 사람이 번갈아서 전화를 하는데, 하루에 안부 전화가 10통은 기본입니다.”
 

손자 손녀들도 “할머니가 우리집안 보물이에요”


사위들도 장모를 신주 모시듯 하다 보니 딸들도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여간 아니다. 이 씨의 집에는 화장품 냉장고가 따로 있다. 딸들이화장품을 사러 가면 꼭 엄마 것까지 사서 가지고 온다. 그러다보니 화장품이 한 가득이다. 가끔 ‘딸 없는’ 친구들이 놀러 오면 선물로 준다.“젊을 땐 아들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요즘은 친구들이 저보고 부럽다고 난리예요.”부모들이 지극정성이다 보니 자녀들도 그대로 따른다. 손자ㆍ손녀들이 할머니를 대왕대비 모시듯 한다.“큰 애가 중학생이고, 나머지 둘은 초등학생인데, 밥 먹을 때 내가 숟가락을 들지 않으면 밥을 안 먹어요. 맛있는 것 있으면 내 앞으로 내밀고. 엄마, 아빠 따라서 그렇게 하는 거겠죠.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호호!”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 사위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5분 넘게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맺으면서 던지는 말이 인상적이다.“괜찮아. 밥도 잘 먹었고 컨디션도 좋다. 니들보다 오래 살까봐 걱정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라!”이씨는 “사위들이 걱정할까봐 아픈 시늉도 못한다”면서 “사위들 소원대로 건강하게 살면서 이 행복을 더 오래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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