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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인이다’가 9년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발행인 칼럼

  • 입력 2022.01.06 00:00
  • 수정 2022.01.11 17:59
  • 기자명 유명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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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너무 조용하네. 안 되겠다. 다른 곳에 가자.”

 최근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 눈길을 끄는 사연이 올라왔다. 한 대학생이 친구들과 카 페에 갔더니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어서 괜히 눈치가 보여 그냥 나왔다는 내 용이다. 카페는 으레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지만, 최근 들어 카페에서 공부뿐 아니라 각종 업무를 보는 등 이른바 ‘카공족’이 증가했다. 최근 들어 카공족으로 인해 조용한 카페에 이야기하는 것이 눈치가 보여 마음대로 떠 들지도 못한다는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멀쩡한 집, 사무실 놔두고 돈 아깝게 왜 굳이 카페에 가는 거야?”

◇ 식욕, 성욕, 수면욕 그리고 ‘공간욕’
 누구나 공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흔히들 얘기하는 식욕, 성욕, 수면욕 등과 비슷한 개념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욕구를 가지는 것은 타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있 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공간은 권력이나 힘의 구도가 가 장 예민하게 작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부장이나 사장은 회사가 편한 공간 이지만 신입사원에게는 불편한 공간인 것처럼 말이다. 만약 부장이 출장이라도 가는 날엔 과장은 편해지지만 그 밑으로는 여전히 불편한 공간이다. 
 우리가 카페에 가는 것도 이러한 공간의 욕구에 기인한다. 집이나 사무실보다 카페 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카페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이나 사무실은 다르다. 엄 마의 잔소리부터 부장의 핀잔까지, 온통 나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나만 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특히 약자일수록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은 더욱 힘들다. 한 건축전문가는 ‘현 실의 공간을 이용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가난할수록 가상공간에 빠져든다’ 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싸이월드나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가상공간이 생겼을 때 초 등학생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초등학생들은 카페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계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가상의 공간을 누린다면 어른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개그맨 윤택, 이승윤씨가 출연하는 ‘나는 자연인이다’가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다. 산 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쾌감과 행복은 바로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간접적으로나마 충족된 데서 오는 게 포만감이 아닐까.


◇ 한옥 구조의 진짜 이유
 과거에는 양반들도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가 어려웠다. 그 시대의 윤리 때문이었다. 그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자 했던 노력은 한옥의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조선 시대 양반가는 부부가 서로 각방을 썼다. 잠자리까지 공적인 공간으로 탈 바꿈한 것이다. 그리하여 만들어낸 해결책은 바로 ‘툇마루’였다. 뒷문을 뚫고 툇마루 를 만들어서 서로 오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툇마루 덕분에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사 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른 예로는 ‘내외벽’도 있다. 한옥의 안채에서 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벽이 버티고 서 있다. 그 벽은 안주인과 얼굴이 마주치기 전에 시간을 잠깐 벌 어주는 역할을 한다. 벽 하나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이는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었 다. 벽이 잠시나마 타인의 시선을 막아 마음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던 셈이다.


◇ 공간에 대한 욕구와 해소
 60~70년대만 하더라도 봄에는 마을 처녀들이 그렇게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갔다. 이 역시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누리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존 스타인벡이 쓴 ‘에덴의 동쪽’에는 여자들만의 공간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장소는 양장점이다. 
 ‘여기에서는 고래 뼈 코르셋으로 여인의 육체를 여신의 육체로 만들 필요가 없었 다. 이 양장점에서 여자들은 화장실에 드나들고 과식하고 간지럼을 태우고 낄낄대고 방귀를 뀌었다.’
 공간이 즐거운 진짜 이유는 이런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즐거운 공간에서는 누구 도 의식하지 않은 채 긴장을 풀고 여유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체 높은 양반도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에도 공간에 대한 욕구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기름진 땅과 넓은 들에 지세가 아름다운 곳을 가려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십 리 밖, 혹은 반나절 길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 매양 생각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장만해 둔다 면 이것은 자손 대대로 이어나갈 만한 방법이다.’ 
 요즘으로 치면 산이나 공원 같은 것을 의미한다. 도시 곳곳에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미술관, 공원, 산책로 등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코로나19로 공간들이 콱콱 막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안증세와 우울증이 증가 하고 있는 보도가 연일 흘러나온다. 채워지지 못한 공간 욕구, 혹은 자유에 대한 갈 망 때문이 아닐까. 몸을 위해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심하는 것처럼, 정신과 관련해서 도 공간을 배려하는 정성과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 주말은 식당과 도심을 피해 한적한 교외로 나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며 우울한 기분을 털어버리 는 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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