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질까봐 못 먹겠어요.”

 한의원을 찾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 같은 낭설을 믿는다. 심지어 한약을 먹으면 신장이 망가진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전통의학에 대한 마타도어(흑색선전)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최근 국민들 사이에 한약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고 있다. 의사와 한의사로 직종이 나눠져 있는 한국 의료계 현실과 관련된 사안이지만 이런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음식과 약은 한 뿌리이다’라는 뜻이다. 여 기서 약(藥)은 화학합성약품인 양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연약초인 한약을 말한 다. 실제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 사용되는 한약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무침으로 즐겨 먹는 도라지도 길경(桔梗)이라 는 이름으로 호흡기질환 치료에 쓰이는 한약이다. 동짓날 팥죽 쑤어 먹는 붉은팥도 적 소두(赤小豆)라는 이름으로 신장질환 치료에 쓰이는 한약이다. 
 사례는 무수히 많다. 주식인 멥쌀은 경미, 보리쌀은 맥아(麥芽)라는 한약이고 찹쌀 은 나미(糯米)라는 한약명으로 사용된다. 과일처럼 알고있는 대조(大棗)는 대추이 고, 양념으로 쓰는 후추도 한약재가 되면 호초(胡椒)라 부른다. 생강도 말려서 건강( 乾薑)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한다. 

 한약은 우리가 먹는 식품을 약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 진다는 흑색선전과 관련해 가장 놀라운 ‘한약재’는 콩나물이다. 콩나물은 대두황권( 大豆黃卷)이라는 이름의 한약이다. 이는 우황청심환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논리에 따르면 ‘콩나물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논리가 생긴다. 콩나물이 숙취 해소와 간 보호에 명약인 것은 상식인데 한약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주장으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 콩나물의 주성분 중 하나인 아스 파라긴산이 간장보호와 해독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자료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정작 간과 신장을 망가뜨리는 주범은 이런 식품이나 식품과 거의 같은 천 연 약물인 한약재가 아니라 별생각 없이 장기간 복용하는 화학 합성약품이다. 세계 어느 나라 학계에서도 한약이 화학합성약품을 제치고 간독성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 이라는 연구 결과를 도출한 적이 없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이 같은 낭설이 돌고 있다.
 한약이 간을 망가트린다면 ‘동의보감’ 시대의 조상들은 간장병 걸리면 모두 그냥 죽 어가야만 했다는 것인가? 전통한의학에는 당연히 황달 등 각종 간장질환을 치료하 는 수많은 명약들이 전해져오고 있다. 한약을 뭉뚱그려 간에 나쁜 것으로 국민을 세 뇌시킬 것이 아니라 ‘한약도 일부의 약은 양약처럼 간에 독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전문가인 한의사의 진료에 따라 처방받아 복용해야 한다’고 말해야 정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