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애착 내려놓으면 물드는 노을

시 한 잔을 따르며 - 복효근 '낙엽'

  • 입력 2021.11.05 00:00
  • 수정 2021.11.26 11:48
  • 기자명 이병욱 시민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 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찬란한

신.
- 복효근, ‘낙엽’ 전문 -

사계절 중 가을은 쓸쓸함, 이별, 그리움 등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대한 비유로 널리 쓰인다. 특히 인생의 허무함을 빗댄 시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인생의 사전적 의미는 ‘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② 어떤 사람과 그의 삶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 ③ 사람이 살아 있는 기간’으로 정의한다. 복효근 시인의 ‘낙엽’은 살아있는 생명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생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기꺼이 죽음을 수용하는 긍정적 이미지가 클로즈업된 가을을 대표하는 시다.
나뭇잎이 가지에서 이탈하여 지상에 떨어지는 시간은 길어야 10여 초다. 그것도 바람이 불어 나무의 키보다 훨씬 멀리 날아가서 떨어질 때다. 그러면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는 얼마나 걸릴까? 물론 낙엽이 떨어지는 순간보다 엄청 길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 사람들에게 인생은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한다. 매달린 채 밤낮 떨면서 말이다. 낙엽은 임무를 마치면 스스로 낙하한다. 그것은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만약 떨어져야 할 나뭇잎이 겨우내 가지를 붙들고 있으면 나무는 서서히 고사하고 만다. 자기 자리를 놓고 명분도 없는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가지에 붙어 있으면 고사하는 나무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