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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올림픽엔 금메달 따서 ‘자랑스런 아빠’ 될래요”

  • 입력 2021.11.02 00:00
  • 수정 2021.11.26 09:17
  • 기자명 김민규기자, 이주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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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도쿄패럴림픽 탁구 대표팀 차수용 선수


“탁구채 한번 쥐어보겠나?”

그가 탁구를 만난 것은 대구보훈병원에서였다. 병원 안에 탁구실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멍하니 탁구 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탁구채를 쥐어주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몇 번 휘둘러보았다. 그날 저녁,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눈앞에 탁구공이 아른거렸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그 몇 달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술에 취한 채 친구가 모는 자가용 뒷좌석에 앉은 것까지가 기억의 전부였다. 다시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 그 사이 심장이 한번 멈추었고 의사가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다치지 않은 장기가 없었다. 특히 경추를 크게 다쳤다. 병원에서는 팔 다리 모두 움직이지 못하는 사지마비 장애 판정을 내렸다.
“탁구가 없었다면 제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요?”
2021년 도쿄패럴림픽에서 탁구 개인 동메달, 단체 은메달을 딴 차수용(41·대구시청)선수의 이야기다. 그렇게 탁구를 재활운동으로 시작해 공 넘기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즈음, 텔레비전에서 패럴림픽 남자 탁구 결승전을 보게 되었다. 그 경기에서 한국팀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가슴이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가 걸리고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전 세계인들 앞에서 최고가 되어보자!”
그렇게 탁구 입문 5년차에 그는 전문체육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로부터 4년간 피나는 연습 끝에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국가대표로 선별됐다.
선수생활은 순탄지 않았다. 2016년 리우패럴림픽 탁구 단체 결승을 앞두고 자꾸만 열이 났다. 크게 아픈 것 같지가 않아서 단체 은메달이 확정되고야 검사를 받았는데 맹장염을 방치해 복막염으로 번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브라질 현지에서 긴급수술을 받고도 일주일간 브라질에 머물러야 했다.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입원을 하더라도 한국에서 치료받자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미국을 경유하는 비행기에서 다시 열이 심하게 났다. 미국 응급실에서 CT를 찍고 더 검사받기를 권유했지만 이러다 영영 한국에 못 돌아올 것 같아 그대로 입국을 감행했다. 한국에 귀환하자마자 병원에 입원해 30여일을 환자 신세로 지냈다.
2021년 도쿄패럴림픽을 준비하던 작년에는 어깨 인대가 파열됐다.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있던 즈음이었다. 수술도 어려웠지만 재활과 안정에 들일 시간이 부족했다. 급한 마음에 훈련을 강행하다 결국 상처가 덧나고 말았다. 국가대표 합숙인 5월 전까지 침대에서 꼼짝도 못 했다. 밥도 혼자서 못 먹었고, 씻는 것조차 침대에서 해결해야 했다.
뜻밖의 사고도 겪었다. 7월 중순, 훈련과 재활을 병행하며 합숙 훈련을 하던 중 휠체어가 뒤로 넘어졌다. 이번엔 갈비뼈에 금이 갔다. 올림픽이 한 달 반 남았을 때였다. 2주간 또 침대 생활을 하고도 뼈가 붙지 않았다. 코치와 상의해서 다시 훈련에 참여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경기에 참가했다.
“경기 중에는 아픈지도 몰랐어요.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메달이 확정되고 긴장이 풀리니까 다시 아프더라고요, 하하!”
아프고 힘들어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가족의 응원이었다. 집에서는 자꾸 다치고 들어오는 그를 위해 그만두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차 선수는 그 말에 책임감을 느낀다. 아빠가 된 지 얼마 안 된 그는 아이에게 아버지로서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 아빠를 봤을 때 아빠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다음 올림픽 때는 꼭 금메달을 따서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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