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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힘들지만 아내에게 논을 팔아서라도 기부하자고 했죠”

  • 입력 2021.11.01 00:00
  • 수정 2021.12.07 11:23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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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이 지구본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윤 회장은 2014년부터 사회공동복지모금회에 매년 1억원씩 기부해서 개인 기부 부문에서 대구경북 1위를 달리고 있다. 올해 모교인 경북기계공고에서 체육관을 짓는데 20억을 기부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저를 받아줘서 고맙죠.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경북기계공고는 올해 체육관을 새로 지었다. 체육관의 이름은 ‘윤재호홀’.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이 20억을 출연해 건설비에 보탰다. 준공식은 11월로 예정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다. 윤 회장은 “학교에서 돈 준다고 무턱대고 받지 않는다”면서 “그동안 학교와 꾸준히 쌓은 신뢰와 오랜 시간 나눈 교감 덕분에 후배들에게 통 큰 기부를 할 기회를 얻었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대구경북에서 기부를 언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모교인 경북기계공고에 8억여원의 장학금을 내놓았고, 금오공대에 3억원의 발전기금, 구미시에 2억여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2014년부터 사회공동복지모금회에 매년 1억원씩 기부해서 개인 기부 부문에서 대구경북 1위를 달리고 있다. 2000년부터 소년소녀 가장 20여명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가 하면 노인무료급식센터에 10년 넘게 쌀을 대주고 있기도 하다.

밥솥 오작동하는 날은 아침, 점심 굶어야
윤 회장은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으로 기부를 시작했다. 그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이 깊다. 어린시절 재봉틀을 해체했다 조립하는 걸 재밌어하는 동생을 보면서 형님이 “너는 공고에 가라”고 해서 공고로 진학을 했다. 학교에 다녀보니 적성에는 딱 맞았다. 졸업한 뒤로 꾸준히 후배들을 보살피고 기부를 해온 근본적인 동력이 바로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학창시절이 늘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다.

경북 청송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 혼자 구미로 와서 자취를 했다. 기술기능대회를 준비하면서 거의 매일 선배들에게 매를 맞았고 늘 배를 곯았다. 밥솥 탓이 컸다. 자주 오작동을 일으켜 아침에 눈을 떠 보면 생쌀이 그대로 있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아침을 굶고, 도시락을 싸지 못해서 점심까지 건너뛰었다. 저녁에서야 실습실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이 그날 첫 끼니였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몸무게가 53kg이었습니다. 졸업 후 취업하고 1년 만에 75kg까지 올라왔습니다. 지금도 그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구요. 삼시 세끼에 야근할 때 야식까지, 끼니를 제때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배가 든든해야 일도 잘할 수 있구요.”

‘삼성전자보다 더 잘 먹이자!’
1985년에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기회가 있으면 늘 후배들을 찾아가 밥을 샀다. 대우전자에 취업한 이후 종종 후배들을 찾아가 밥을 샀고, 1994년 자본금 2,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뒤에도 직원들 먹는 음식에는 특별히 신경 썼다. ‘삼성전자보다 더 잘 먹도록 하자’는 것이 마음속 슬로건이었다. 배고픈 게 얼마나 서러운지 몸소 겪은 때문이었다. 윤 회장은 “내가 겪었던 어려움에 비추어 타인의 형편을 헤아리고, 가장 가까운 이들부터 배려하는 것이 기부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밥 먹었냐?” “언제 밥 한 끼 먹자”는 말을 달고 산다.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정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윤 회장이 주변 사람들과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에도 밥 한 끼 권하는 따뜻한 정이 묻어난다.
‘1명의 리더가 1,000명을 먹여살린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 1명을 특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한국인은 누구나 총기가 있다.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하는 것이 한국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누구든 그 1명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직원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심으려고 노력한다. 그 바탕에 인간적인 신뢰가 필요하다는 믿음을 가
지고 있다.
“일단 돈이 제일 중요하겠죠. 하지만 돈만으로는 안 됩니다. 가족까지 보살핀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가족 중 누가 아프면 병원이라도 소개해주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동료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꾸중보다는 대책 마련, ‘탓’하기보다 ‘칭찬하기’

청년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정진하십시오!”사고가 터지면 곧장 대책부터 생각한다. 잘못한 사람을 찾아내 책임을 묻기 이전에 대책을 강구해 난관을 극복할 방법을 찾는다. 윤 회장은 “자꾸 꾸중하면 주눅만 든다”면서 “사태를 수습하고 대처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일을 배우고 인로 성장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유난히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 목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윤 회장의 따뜻한 리더십 덕분에 주광정밀은 창업한지 불과 10여년 만에 관련 업계에서 주목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2012년 기능한국인 70호에 선정된 이후 2013년 백만불 수출탑을, 2016년 컴퓨터응용가공 분야 대한민국 명장 선정과 함께 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직원 숫자가 베트남과 한국 모두 합쳐 650여명, 최고 연 매출은 2019년에 1,800억원을 기록했다.
사업이 꾸준히 성장한 것처럼 기부 역시 매해 조금씩 늘여왔다. 그는 기부는 액수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윤 회장은 지금도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화환을 보낸다. 화환 숫자가 10여개에 이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육체적으로는 고등학교 시절이 제일 힘들었죠. 가족을 떠나 혼자 자취하면서 돈도 못 벌던 시기였잖아요. 그러나 학교가 저를 품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들과 선배님들, 후배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죠. 후배들에게도 늘 그런 말을 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그리고 나를 가르쳐 주신 스승님들과 학교, 그리고 우리를 키운 사회와 국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요. 제 진심입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윤 회장이 경영하는 사업체도 매출이 다소 하락했다. 그럼에도
기부 규모를 예년 수준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윤 회장은“아내와 두 자녀에게 ‘논을 팔
아서라도 기부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하더라”면서 “무엇보다 기부가 가문의 문
화로 정착된 것 같아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특히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는 “현실적으로 부동산 문
제를 비롯해 힘든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옛날처럼 개천에서 용
나오는 것은 힘들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가 노력을 배신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아예 안 됩니다. 그러나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어
떻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흐르고 또 상황이 바뀌겠지요. 희
망과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100%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열매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반
면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습니다. 늘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해줬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더 잘할 테니 열심히 자기 인생에 정진하기를 바랍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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