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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듣는 다산(茶山)의 낮은 목소리

  • 입력 2021.10.03 00:00
  • 수정 2021.10.28 17:31
  • 기자명 조남선 성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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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시비(是非) 즉

 

옳고 그름의 저울이고, 하나는 이해(利害) 곧이로움과 해
로움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큰 등급
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이 가장 으
뜸이다.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
이다. 그 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
다.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들이
는 것이다.” -답연아(答淵兒) 중에서

55세의 다산(茶山)이 먼 땅끝 유배지에서 아들 학연에게 보
낸 편지의 일부이다. 모함으로 유배된 지 10년 즈음 아들의 노
력으로 어렵게 사면이 내려졌지만 그의 복귀를 두려워한 조정
의 신하들의 방해로 일이 순리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러자 사
면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던 인척과 다산의 옛 친구에게 호소
해 보자는 아들의 편지에 이런 답장을 보낸 것이다. 다산은 아
들이 제안한 방법은 ‘세 번째 등급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나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일’이라고 덧붙이며 그런 처신을
왜 굳이 하겠느냐고 조용히 타이른다.
다산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정민 교수는 그의 저서 ‘다산어
록 청상(茶山語錄 淸賞)’에서,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
기란 어려운 일이며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은 싫
어해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른 일을 해서라도 이로움을 얻
으려고 하다가 결국 해로움만 불러들이게 된다고 했다. ‘첫째
는 드물고 둘째는 싫어 셋째를 하다가 넷째가 되고 마는 것’이
란 설명이다.
‘다산어록 청상(茶山語錄 淸賞)’의 청상(淸賞)은 “맑게 감
상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찾아온 이 계절, 가을에 꽤 어울리는 말이다. 여름내 지
루하게 이어온 장마와 무더위, 해를 넘기며 이어지는 재난 속
에서 우리는, 마음을 어루만지고 돌볼 새가 없었다. 몸도 마음
도 텅 비어가는 것 같은데 뭔가에 쫓기듯 일상은 분주하기만
하다. 하루하루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만도 힘겨워 마음은 보살
필 겨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시비(是非)의 저울보다 이해(利
害)의 저울이 늘 앞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이로움의 저
울 바늘만을 좇고 있는 것 같다.
이 가을, 시대를 뛰어넘어 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살기를
권하는 다산의 낮은 목소리를 청상(淸賞)해 보자. 어쩌면 삶의
무게로 휘청거리는 우리에게 그래도 부여잡고 버틸 수 있는 심
주(心柱) 하나 세워 줄지도 모르니.
“무릇 천하의 사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오직 나만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내 밭을 등에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
가? 밭은 지킬 것이 없다. 내 집을 머리에 이고 도망갈 자
가 있는가? 집은 지킬 필요가 없다. … 결국 천하의 사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오직 이른바 ‘나’라는 것은 그 성질이
달아나기를 잘하고, 들고 나는 것이 일정치가 않다. 비록
가까이에 꼭 붙어 있어서 마치 서로 등지지 못할 것 같지
만, 잠깐만 살피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래
서 천하에 잃기 쉬운 것에 ‘나’만 한 것이 없다.” -수오재기(
守吾齋記)중에서

▷추천서 – 정민, <다산어록청상 (옛사람 맑은 생각)>, 푸르메,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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