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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의 열망, ‘공정 사회’

발행인 칼럼

  • 입력 2021.09.07 00:00
  • 수정 2021.09.07 11:08
  • 기자명 유명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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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로부터 활을 잘 쏘았다. 그러나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건 공정한 경쟁이 더해진 덕분이다.”


양궁은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쇼트트렉이 바로 그런 종목이다. 공정한 선발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전통보다 현재의 시스템 덕분이라는 양궁계의 의견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공정에 대해서도 우리 조상들이 다른 국가나 민족과 비교해 관심이 상당히 깊었다.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영국식 면접과 중국식 필기시험이다. 이 중에서 영국식은 아무래도 아는 사람의 자제나 지인을 선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과거는 답안을 보고 뽑기 때문에 면접보다는 공정하다. 과거제를 시행한 나라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이다. 일본은 유학은 전파됐지만 과거제까지 실시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제는 후손들이 조상 덕으로 출세하는 관습을 상당 부분 타파했다. 조선 양반은 원론적으로는 자질과 실력으로 유지되는 네트워크 사회였다. 그러나 공정한 제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불공정하기 이를 데 없는 면접제도를 만든 영국은 진작에 망했어야 하지만 의회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훌륭한 제도 못지않게 사회적 분위기와 의지도 중요하다. (게다가 과거제를 발명한 중국은 또 어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정에 대한 의지가 관심은 높은 편이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공장장을 역임했던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공평한 걸 싫어한다. 차별을 제일 싫어한다. 예를 들어 추석 선물을 다른 것으로 줬다가는 난리가 난다. 공정이 체질인 셈이다.

역사에서 찾은 공정성 의식
과거제와 공정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를 역사 찾아볼 수 있다. 김명열(1613~1672)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이 사람은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몰락한 가문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최고의 스승들에게 배울 형편은 못 되었다.

한미한 집안에서 급제자를 냈다는 것은 과거제가 비교적 공정하게 시행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서울에 있을수록, 그리고 집안이 좋을수록 더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놓고 보면 어떤 응시자는 유리한 입장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과거제 자체가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었다. 선비들은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비교적 가난하거나 한미해도 좋은 스승을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김명열의 경우 과거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같이 합격한 인물 중에 명문가 자제인 이은상(1617~78)과 김우석(1625~91)이 있었다. 이은상은 서울에만 있었다. 지방으로 파견된 적이 한번도 없었고, 김우석은 지방으로 가긴 했으나 관찰사 같은 고위직으로 나갔다. 김명열은 잦은 지방 파견에, 직책도 현감 정도였다.

이은상은 어려서부터 빼어난 글솜씨로 유명했고, 김우석은 머리가 좋아 뭐든 금세 깨닫는 영민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우석은 어릴 때부터 향시에서 번번이 선두를 차지했다. 그러나 다른 기록도 있다. ‘숙종실록’ 졸년 기사에 “이은상은 사람됨이 경망하고 천박해 벼슬에 있으면서 비루하고 잗다랗다(아주 자질구레하다). 비록 지위가 판서의 반열에 올랐으나 명론이 중하지 못해 자주 탄핵을 받았다”고 기록되었다. 다른 곳에선 “비록 글재주는 있었으나 인망이 전혀 없었으니, 어찌 이 직임에 합당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어릴 때의 호평까지 싹 다 뒤엎은 비판이다. 유학 사회에서는 상당한 비난이다.

김우석의 졸년 기사에도 “그 사람됨이 세속에 따르면서 남의 마음에 들기를 잘하여 자못 순실한 기풍이 없었다”는 세평이 실렸다. 당시에도 금수저가 있었고 실제로 다소 손쉽게 좋은 자리까지 간 것이 사실이지만, 문치 국가답게 혹독한 비평이 뒤따랐다. 조선 선비들의 비판은 실로 엄정하다. 임금에게도 욕 빼고는 다 한 것 같다. 이런 비판이 없었다면 조선의 금수저들은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지금은 미디어의 발달로 여론의 작용과 영향력이 훨씬 더 커졌다. 공정한 제도와 공정하고자 하는 의지, 그 의지에서 비롯된 여론과 비평 모두가 공정에 필요한 요소들이다. 특히 공정에 대한 여론은 과거와 비교해 훨씬 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공정에 대한 열망이 더 커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곧 공정성을 향한 열망
‘공정’하면 스포츠를 빼놓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눈 앞에 펼쳐지니까. 스포츠에는 공정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하게 투영되고, 동시에 열광한다. 스포츠를 응원하는 대중보다 더 뜨거운 집단은 없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눈을 속이고 경기를 조작할 수는 없다. 선수는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또 응원하는 사람은 온전하게 몰입한다.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모두 공정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기반한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향한 격려와 박수는 곧 우리 사회의 공정을 향한 의지라고도 할 수 있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심리는 부당한 인사에 분노한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의기와도 맥락이 닿아있다. 이은상과 김우석을 비판한 선비들이 이 시대로 온다면 야구든 축구든 가장 열렬한 스포츠팬이 되지 않았을까. 특별히 인사와 관련해, 스포츠팀에서 선수를 구성할 때 감독의 성향이 반영되기는 하겠지만 ‘누가 봐도 아닌 선수’를 기용할 수는 없다. 지금 이 시대 사람처럼 선비들도 스포츠에 푹 빠질 것 같다.

양궁처럼, 혹은 스포츠 자체처럼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만큼 성취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공정’은 반만년의 열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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