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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 아닌 채수로 ‘맑은 식물성 ’ 풍부한 식감…시원 달콤 새콤

코로나19, 버텨야 이긴다2 - 이주현 봉현이네 봉평메밀 대표

  • 입력 2021.09.07 00:00
  • 수정 2021.09.07 11:02
  • 기자명 김향숙 시민기자 / 김윤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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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때는 해발 700m 첩첩 산속 작은 마을에 40만 명 인파가 몰린다. 코로나19로 지
난해에 이어 올해도 축제는 열리지 않지만 봉평 땅 60만ha에 메밀꽃은 흐드러질 것
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
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던 소설 속 장면은 소설 밖에 이르러 더욱 끝없다.

봉평이 메밀의 대표적 산지가 된 것은 척박한 환경 때문이었다. 가물고 팍팍한 땅에
달리 심어 거둘 만한 작물이 없었다. 메밀은 이런 땅에서도 잘 자랐다. 악조건뿐인 땅
에서도 씨를 뿌려 30여 일만에 다 자라 꽃을 피우고, 꽃 핀 지 30여 일만에 열매를 맺
는 초고속 성장 식물이다. 메밀은 생명력 강인한 식물이다.

깐깐했던 원칙주의자 아버지
이주현 대표는 2013년 봉현이네 봉평메밀 문을 열었다. 얼마 전까
지만 해도 그가 식당을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
자신은 물론 주변에서도 그는 평생 놀면서 먹을 수 있을 거
라고 믿었다. 그의 아버지는 40년 전 지역에서 꽤나 알려
진 원대오거리 중화반점 OO장 주인이었다. 손님들이 매
일같이 북적이는 식당을 오가며 아버지의 일을 도왔던 그
는 부족한 게 없었다.

아버지는 제법 큰돈을 모았다. 그와 가족은 아버지가 그
돈을 모으는 데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을 것이라
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꼼꼼한 원칙주의
자였다. 무엇보다 깔끔했다. 비데가 없던 시절에도 화장실을 가면 다 씻고 나와야 직
성이 풀렸다. 기본적인 위생 관념이 철저했다.

조리 과정과 재료 사용에도 깐깐한 원칙이 있었다. 재료값을 아끼지 말 것, 기본을
지킬 것. 좋은 재료를 써야 좋은 첫맛이 나고 뒤끝에 맑은 맛이 오래 남는다. 그 첫맛
과 끝맛이 손님을 다시 오도록 이끈다. 식당을 다시 찾게 하는 힘은 대단한 조리법이
나 경영 묘책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상식을 지키는 것이라는 게 아버지의 철학이
었다. 깐깐한 아버지가 음식 재료·부자재값을 아끼지 않은 것은 고집스런 자존심 때
문이었다.

기본을 잘 갖춘 음식이 맛없을 리가 없었다. 원칙대로 해야 하는 성격과 위생 관념
은 본인에게는 힘들겠지만 식당 손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단 식당에 들어서면 중
국집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맛있는 식당이 깨끗하기도 했다.

 

 

고생 모르던 그가 억척이 되기까지
아버지는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할 때 장갑을 끼지 못하게 했다. 설거지가 끝나고
잘 씻어 말리지 않으면 장갑에서 냄새가 났다. 냄새 나는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거
나 그릇을 만지면 그릇에서도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을
숙제 검사하듯 검사했다. 그릇에서 냄새가 나면 음식의 첫맛을 버리
고 첫맛을 버리면 음식 장사는 접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아버
지는 그릇 하나에서라도 냄새가 나면 모든 그릇을 다시 씻
게 했다. 일하는 사람들로선 죽을 맛이었다.

이제 그와 가족은 부러울 게 없었던 그 시절 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일종의 금기처럼 덮어둔다. 그 많던 재
산을 뜻하지 않게 다 잃었기 때문이다. 충격이 너무 커서
어머니는 그 후 10년을 절에 들어가 살았다. 식당 주방에서
아버지를 돕는 일 말고 고생이라고는 몰랐던 그는 억척이 됐다.
그에게는 특유의 낙천성이 있다.

식당 주방에서 몸을 아까지 않고 일하는 그를 보았던 아버지는 ‘너는 절대 식당은
하지 마라’고 유언했다. 딸이 몸을 아끼지 않고 고생할까봐서였다. 그런 그가 8년째
식당을 성업 중이다. 아니, 코로나19 2년은 빼야 한다. 특히 단체 손님을 받지 못해 걱
정이 많다. 하지만 그는 버틸 수 있다. 맛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보내주는 신뢰가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요모조모 좋은 메밀…당당히 권해요”
“무엇보다 메밀이잖아요. 메밀의 루틴과 퀘세틴 성분은 모세혈관의 투과성을 낮춰
혈당을 낮춰 줍니다. 고혈압,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좋아요. 전분과 지방질의 함량은
낮고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해 다이어트에도 좋습니다. 이런 음식이
라면 당당히 권해도 되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맛. ‘봉평메밀’은 육수 대신 채수를 쓴다. 식물성 재료인 메밀의 효
능을 최대화한다. 채수는 일곱 가지 이상의 과일과 채소로 우려낸다. 먼저 양념 어우
러진 채수를 한 모금 맛봤다. 맑고 시원함이 온몸에 퍼지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달콤
새콤한 맛이 앞뒤를 감싼다. 잘 익히고도 쫄깃한 면발과 이와 같은 굵기의 절임 무와
비트. 이들을 한 입 베어 물자 풍부한 식감이 채수의 여운 속 입안의 감각을 온통 살린
다. 무와 비트를 면발의 굵기와 같게 내린 것은 탁월한 선택. 입맛이 동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면발을 베어 물었다. 채수까지 다 마셨다. 맑은 것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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