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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은 우리 사회 비정상성의 표지 두려움 없이 드러내고 맞서야

갑질 없는 사회를 향하여

  • 입력 2021.09.07 00:00
  • 수정 2021.09.07 10:48
  • 기자명 시민기자 7기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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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은 멸칭이다. 경멸이나 비하의 뜻을 담고 있는 접미사 ‘-질’이 붙어 어감부터 부정적이다. 주관적 판단이 들어 있는 이런 말은 사회과학 용어로는 적절치 않다. 그럼에도 ‘갑질’은 일반은 물론 학계에도 널리 쓰인다. 일부의 예라 하더라도 ‘갑질’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특징적으로 설명하는 열쇳말이기 때문이다. ‘갑질’은 이 시대 한국 사회 일각의 비정상성을 드러내는 표지다.

‘갑질’은 국어사전에도 올랐다. 국립국어원이 2016년 문을 연 개방형 한국어 온라인 사전 ‘우리말 샘’에 올린 ‘갑질’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상대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상대를 호령하거나 자신의 방침에 따르게 하는 짓.” 소박한 풀이다. ‘갑’이라는 우월한 지위나 권력을 빌미로 약자에게 부당한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피해나 고통을 가하거나 부당한 행동을 강요하는 행위다. 특히 상대를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복종시키려 함으로써 상대의 명예와 인격을 모욕한다. 이런 점에서 갑질은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갑질…거죽만 덮어 가릴 뿐
갑질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때와 장소, 영역과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2013년 4월 ‘대기업 라면 상무’ 라면 등 무리한 기내 서비스 지속적으로 요구하다 승무원 폭행. ▲4월 서울 압구정동 모 아파트 50대 경비원이 입주민의 상습적 언어 폭력에 시달리다 분신 자살. 이에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명예가 실추됐다면서 경비원 등 용역 노동자 106명 전원 해고. ▲5월 30대 대기업 영업사원이 50대 대리점주에게 ‘재고 물량 밀어내기’ 강요와 막말·욕설·협박. ▲2014년 12월 해외에서도 한국 재벌의 슈퍼 갑질로 화제가 됐던 대기업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이뿐만이 아니다. ▲2015년 1월 경기도 부천 모 백화점에서 모녀 고객이 주차 관리 아르바이트생 4명에게 무릎 꿇리기 등 가혹 행위와 폭언. ▲1월 서울 중구 한 고급 부페식당에서 40대 여성이 호두아이스크림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생에게 폭언. ▲1월 대전 모 음식점에서 남성 고객 3명이 철판 고의로 엎고 땅에 떨어진 볶음밥을 직원에게 강제로 먹임, 물수건 던지고 쌈장 머리에 부음. ▲8월 서울 청담동 모 아파트 주민이 도배 업자와 다투다 업자 쫓아내지 못했다며 경비원 불러 경위서와 시말서 작성 강요, 6개월 후 다시 강요.

또한 ▲2016년 1월 경기도 의정부 모 셀프주유소에서 50대 여성이 주유 요구하며 여직원에게 신용카드와 쓰레기 던지고 폭행. ▲2월 용인 모 아파트 주민들 시위에 경비원들 강제 동원 한겨울 새벽까지 시위용 텐트 경비 강요. ▲11월 모 프랜차이즈 피자 본사가 가맹점에 대해 보복 출점과 상생 협약 무시, 회장의 경비원 폭행. ▲2017년 8월 육군 대장 부부가 공관병에게 집안일 강요, 막말과 가혹 행위, 직권 남용. ▲2018년 4월 대기업 전무가 광고사 회의 중 직원에 물컵 던지고 물 뿌림, 퇴실 강요. ▲7월 대기업 회장 교육동 방문 때 승무원 율동과 노래 등 기쁨조 역할 동원. ▲10월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이 직원 무차별 폭행, 석궁·일본도로 닭 잡기 등 엽기 행위 강요, 직원들 토할 때까지 술 먹이기 등 가혹행위.

 
 

 

“상위 계층만이 아니라 전계층으로 기형적 확대”
갑질 행위의 심리적 특성은 먼저 사적·공적 인간 관계를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위계에 따라 줄 세운다. 타인과의 모든 관계를 서열화해 개별적인 갑을 관계로 치환하거나 사유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이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다면 그 우월적 지위로 하위에 있는 대상을 소유물이나 노예처럼 지배하거나 복종시키려 한다. 인격적 존재가 아닌 감정 배설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갑질의 심리적 바탕에는 소유욕, 과시욕, 열등감, 복수 심리, 반사회적 적대감 등이 깔려 있다고 본다.
최항섭 교수(국민대 사회학과)는 “한국 사회에서 갑질은 상위 계층만이 아니라 전 계층에 확산되고 있는 기형적 현상”이라면서 “이는 ▲상대적 박탈감/우월감의 심화에 따른 보상심리, ▲무한 경쟁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맹목적인 경쟁이 가져온 불안감과 강박관념, ▲노블레스 오블리지의 부재로 올바른 롤모델이 없고 공정성의 약화로 공정하지 못한 행동, 정의롭지 못한 행동에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면서 사회 갈등 심화 ▲우리 사회가 서로 믿지 못하는 저신뢰 사회가 되면서 서로를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인식하기보다 ‘언제든지 내가 가진 것을 빼앗아갈 수 있는 믿지 못할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다른 사람을 냉혹하게 평가하고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 생각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한국 사회는 객관적 계층 격차에 비해 주관적 계층 격차가 큰 사회다. 나와 나보다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더 나은 사람과의 격차를 더 크게 느낀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고, 그로 인해 그 사람으로부터 인격적 존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진다. 존중을 받지 못할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거나 상대방의 인격적 수준에서 찾기보다 ‘한국 사회는 원래 이래. 계층적 지위가 우세한 사람은 열세인 사람에게 막대해도 되는 사회’라는 인식을 갖는다. 제대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사회를 바꾸기보다 자신이 더 많은 부와 더 강한 권력을 갖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갑질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진단도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 계층 격차보다 주관적 계층 격차를 더 크게 느끼고 그런 사회에서 남들보다 더 잘살기 위해서는 갑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낄 때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갑질이 판치는 세상으로 변해 갈 것이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그 사이를 메울 수 없을 때 우리 사회는 새로운 신분제 사회로 굳어갈 것이다.

‘현대판 신분제’로 가고 있다는 경고음
한국 사회에서 신분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식 폐지됐다. 앞서 1801년(순조 1년) 정순왕후의 명으로 궁궐에 속한 내노비(內奴婢) 3만 6,974명과 관청에 속한 시노비(寺奴婢) 2만 9,093명 등 모두 6만 6,000여 명의 공노비 대장을 돈화문 밖에서 불태워 양민으로 돌렸다. 1886년(고종 23년) 노비 자녀에 대한 매매 금지와 노비 세습제 폐지 등을 정한 ‘사가노비절목(私家奴婢節目)’을 시행하면서 그동안 전란과 국가 재정 파탄으로 근본이 흔들렸던 노비제도는 갑오개혁을 통해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점점 낮아져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청년 세대의 절망감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자유를 더욱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흐름은 양극화를 심화 고착시킨다. 이런 흐름을 멈춰야 한다. 갑질은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현대판 신분제’로 가고 있다는 경고음인지도 모른다. 갑질을 없애려면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 의식과 인권 감수성을 높여야 하고 우선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을이 갑의 횡포에 맞서고 이를 공론화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 두려움 없이 갑질을 갑질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갑질이 심화 확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갑질에 고통 받는 모든 을들은 언제까지 숨죽이며 참고 살아야 하나. 이제는 두려움 없이 드러내고 당당히 맞서야 할 때다. ‘시민저널 시민기자’가 ‘갑질 없는 사회를 향하여’ 기획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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