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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눈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우정

이진숙 ‘클럽리의 문화마당’

  • 입력 2021.09.06 00:00
  • 수정 2021.09.07 10:33
  • 기자명 이진숙 전 '클럽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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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사라졌다. 이메일과 문자가 말을 대신하고, 티비와 유튜브가 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고받는 말에도 남는 게 별로 없고, 더러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잘 만나지질 않는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도 남편과는 ‘말 안 해도 아는 사이’가 되어선지 긴 말이 필요 없다. 우리는 대체 누구와 무슨 말을 하며 사는 걸까?

말이 대화가 아니라서 아쉽고, 관계가 늘 그 자리라서 안타깝다. 모두 자기 얘기를 하는듯한데 꼭 그렇지도 않다. 이젠 좀 하던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길고 자세한 말도 하고 싶고, 넓고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내 말을 하고 싶고,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고, 함께 소통하고도 싶다.
모임에서 누군가 말했다. “환갑이 될 때까지 하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게 있느냐?”고 딸이 묻는데, 쉰 살이나 먹은 자신이 할 말이 없어지면서 생각이 많아지더라고 했다. 별난 사춘기도 없었고, 갱년기 증상도 아닌데, “그동안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고, 또 내가 지금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다.”며 울컥해했다. 환갑이 된 이들은 “십년이나 남았으니 좋겠구만.”하며 부러워했지만, 그들도 답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꿋꿋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면서도 우리의 마음 한 구석은 왠지 허전하다. 이대로도 괜찮을까 불안하다. 여태 듣기만 했고, 다른 사람의 말만 했는데, 이제는 ‘내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얼굴 보면서 살자.” “밥 한 번 먹자.”면서 이야기를 갈망하는데도, 동창모임, 학모모임, 어릴 적 친구모임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 인생이란 결국 자기를 표현하고, 존중받으며,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게 아닌가. 나는 우리에게 ‘내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인 되는 일이 턱밑에 왔는데도 나는 하고 싶은 게 있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아있다’고 위안하면서도 어쩐지 부족해서다. 삶의 태도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스몰 게더링(small gathering)’이다. 통하는 게 있는 사람,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앞으로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들과의 ‘이야기 모임’이다. 이야기가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모임이 좋다. 리더가 준비한 내용을 말하고, 나머지는 듣고 질문하며 참여한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는 거다.

경험해서 아는 것, 도움이 될 만한 것, 알려주고 싶은 것,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함께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면 된다. 책을 읽고 말해보는 것도 좋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변해가는 생각을 나눠도 좋다. 이왕이면 알맹이 있는 말, 긍정적인 얘기,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 이야기가 좋다.
작가 강원국은 ‘어른답게 말합니다’에서 “말하기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 듣기가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말하기는 내 것을 남에게 베푸는 일이다. 또한 말하기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다. 내 말은 내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나눠주는 일이 말하기다. 내가 생산자가 된다. 그만큼 말하기는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했다. 말하기가 그저 말하는 게 아닌 거다.

말하기는 아는 것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게 한다. 말하기로 나눔도 하고 소통도 할 수 있다. 함께 믿고자하는 바를 나누고, 무언가를 도모하고,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행동으로 이어진 말이어야 공허하지 않다. ‘그냥 말뿐’이 아니라, 비로소 ‘말 같은 말’이 되는 거다. 말을 잘하려면 잘 살아야한다.

‘표면적인 대화만으로는 친구가 될 수 없’고, ‘친구랑 관계를 쌓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했다. 노인이 된 후에 ‘친구가 되지 않은 것’과 ‘친구를 만들지 않은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다. ‘정말 바쁘고 시급한 일은 친구를 갖는 일’일지도 모른다. 즐겁게 놀듯이 이야기하면서 우정을 쌓고 싶다. 나는 이야기를 나눈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우정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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