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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살던 곳에서 밀려나‘그 많던 이웃들은 다 어디로 갔나’

재개발·재건축과 원주민들

  • 입력 2021.07.01 00:00
  • 기자명 이철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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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이 ‘공사중’이다. 곳곳에 초고층 신축·재개발·재건축이 한창이다. 치솟는 집값만큼이나 대구 도심은 거대한 공사판을 방불케 한다. 지난 4월말 현재 대구지역에서 진행 중인 주택건설 사업은 169건이었다. 2019년 8월말 대구 도시·주거환경정비사업은 169개소, 면적 9,334,736㎡였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도시내 노후·불량 단독주택이나 밀집지역을 정비하여 새로 집을 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집을 헐어 내고 새로 지어서 주거 환경을 크게 개선한다. 재개발은 기반 시설 정비도 한다. 재개발·재건축로 더 쾌적한 주거 시설과 주거 환경을 누리는 것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본래 목적이다.
하지만 실제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는 주거 시설·환경의 개선이라는 본래 목적보다 집값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 실현을 최대화하는 데 더 큰 방점이 찍힌다. 공익적 측면보다 사익 실현이 실제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밀어가는 동력이 된다. 시장의 논리다.

 


용적률 최대 아파트로 ‘시장의 논리’
재개발·재건축은 사업 구조상 기존의 용적률을 크게 높여 짓지 않으면 사업성이 떨어진다. 공공이 아닌 민간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개발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사업을 진행 할 수 없다. 그래서 대다수 재개발은 아파트로만 짓는다. 다세대주택이나 단독주택은 자투리땅이나 구석진 곳에 추가 건설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기존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아파트라는 하나의 양식으로 획일화한다.
특히 사업시행이 임박하면 조합원의 실질적 구성은 원래 그 곳에서 장기간 살아 왔던 원주민보다는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부터 발생되는 개발이익을 기대하고 외부에서 참여한 외지인(투기자본)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시장논리에 따라 사업성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이 시행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재개발 지역에서 수십 년 생활해온 원주민이나 세입자의 보호는 뒷전에 밀리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필수 사항이 거추장스러운 가외의 일쯤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개발지역에서 살아온 원주민의 입장에서 재개발·재건축은 그럴싸한 명분이나 ‘그림의 떡’일 뿐인 분양권을 내세워 희생을 강요하는 ‘나쁜 제도’일 뿐이다. 수십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도로망과 필지 구조를 단순히 지역이 노후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면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런 부분을 들여다 볼 문제의식은 현장에선 한가한 소리다. 재개발 지역에서 오랜 세월 원주민들이 구축해온 장소성이나 역사성이란 소리도 마찬가지다.

 


원주민 상생·주거권 보호 뒷전

원주민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장기간 거주해온 지역의 토박이로 경제적 능력이 낮은 경우가 많다. 재개발을 통해 새로 공급하는 주택에서 입주하기에는 집값이 턱없이 높다. 재개발 과정에서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없는 세입자가 대부분이어서 사업이 시작되면 반강제적으로 수십년 정주공간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오랜 세월 구축한 사회적 네트워크는 해체된다. 전체적인 그림을 곱씹어보면, 결국 도시정비사업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개발이라는 명분에 지역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묻혀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대구 서구 평리동에서 20여 년을 살아온 김점순씨도 지난해 정든 터전을 떠나 달서구 대곡동으로 이사했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 생활이 옛 단독주택처럼 정겹지도 않고 이웃끼리 왕래도 뜸하다. 삶의 정취와 추억을 재건축 재개발에 빼앗겨 버렸다.
“단독주택에서 생활하면서 이웃과 매일 함께하고 마주했는데 이제는 다 흩어졌어요. 이제는 헤어져 만나기가 힘듭니다. 나이도 많고 건강도 따라 주지 않아 먼 거리를 이동하기도 힘들고요. 예전 시간들이 그립지요. 돌아갈 수가 없어요.”
대구 남구 대명8동 일대에도 재건축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주했고 주변이 철거되고 있지만 이사할 곳을 구하지 못해 여전히 여기서 생활하고 있는 이형우 씨 또한 이곳에서 45년 생활했다. 70년대 시골에서 도시로의 이주해서 지금까지 생활한 곳이 이제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한다. 철거되는 건물처럼 이형우 씨의 추억 또한 허물어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이 생기겠지만 누군가의 추억어린 골목과 건물들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결혼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키웠어요. 아이들 또한 여기서 자라고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경제적 보상이 가장 큰 문제지만 고향보다 정든 제2의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게 정말 막막해요.”


주민의 삶 실질적 개선하는 재개발을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높은 수익성을 위해 대부분 고밀도의 전면 철거방식으로 진행되면서 부동산 투기, 저렴한 소형 주택의 감소 문제가 줄곧 제기돼 왔다.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8∼15%에 불과하다. 주거 부문의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지금부터라도 해외 사례와 같이 소규모 다양성 위주로 장기간에 걸쳐 개발하고 개발 후 주민들이 다시 모여 생활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개발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원주민 등 주민 모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개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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