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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에 발견한 가장 한국적인 것35년 베갯모 연구 결실 착착 내놓아요

심지훈이 만난 사람 박물관 수 이경숙 관장

  • 입력 2021.07.13 00: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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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신간소개 차 ‘베갯모 꽃·수’를 집었다. 사방 10㎝짜리 어른 손바닥만한 베갯모(베개의 양쪽 마구리에 대는 꾸밈새)를 갖고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을까 싶었다. 짧은 에세이 형식의 글을 두고 그에 맞는 베갯모 사진을 놓아 장을 갈랐다. 옛사람의 빼어난 글월을 읽는 듯, 시문을 읽는 듯, 또 소설의 묘사 한 대목을 읽는 듯 ‘그려지는 문장’을 구사해 읽고 보고 생각하는 재미가 남달랐다. 베개자수 연구만 35년째 해온 저자 이경숙은 “다양한 식물문(紋)과 동물문 그리고 문자수로 이루어진 베개를 살펴보면 가족에 대한 옛 여인들의 간절한 기도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이 씨는 베갯모에서 옛 여인들의 간절한 기도뿐 아니라 민화, 명주, 염색, 어원, 꽃 등 다양한 것들을 포착했다. 전통과 전통적인 것이 맥을 못 추는 시대, 양서의 분별이 흐리멍텅한 시대 낭랑한 책을 의기양양하게 펴낸 그녀를 만났다. 인터뷰는 대구 수성구 ‘박물관 수’ 본관 응접실에서 이뤄졌다. 응접실 벽면 중앙에 걸린 ‘전통 문화는 미래의 뿌리입니다’란 액자가 심판마냥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수전문가라 해야 하나. 자수수집가라 해야 하나.
“나는 수집가다.”
-왜 하필 베개자수인가.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동양화를 하면 소재와 함께 한국성이 무엇인지 찾게 돼 있다. 대개 한국적이라 하면 무관심한 것, 무기교의 기교, 해학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 하는 것과 실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대상에 대한 실체를 표현해야 되는데 말은 추상적이다. 동양화를 그리려면 기본적으로 한국성에 대한 철학이 있거나, 그것에 대한 이것이라 말할 수 있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실체를 베갯모에서 발견했다. 대구 남구 이천동 골동가게에서 처음 봤는데, 그걸 살피면서 ‘내가 그린 그림보다 베개자수가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자체로 한국성을 다 갖고 있는 거였다. 그 색채에 끌려 베개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가 몇 살이었나.
“대학 2학년 때였으니 스물한 살이었다.”
-그 당시 한국적인 것을 베갯모에서 찾은 학생이 흔했나.
“흔치 않았다. 친구들은 주로 이끼 낀 기와, 고목, 등잔을 소재로 삼았다.”
-친구들이나 교수들 반응은.
“특별한 건 없었다. 워낙 내성적이라 말 한마디 않고 그림만 그렸다.”
-베개자수를 그렸다는 것은 민화를 그렸다는 것인가.
“지금은 그 말이 맞지만, 내가 대학 다닐 때는 베개 문양을 그렸다고 민화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없었다. 민화는 민화고, 동양화는 동양화였다.”


-베갯모 문양은 거의 다 민화 일부를 실로 본뜬 것 아닌가. 결국 베갯모를 보고
동양화를 그렸다면 민화를 그렸다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사실 동양화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보아 수묵화, 조선화라 했다가 지금
은 한국화라 부른다. 한국화는 재료에 따라 수묵으로 그린 수묵화와 조개, 돌 같은 천
연 원료에 아교를 섞은 동양화 물감으로 그린 채색화로 나뉘는데, 불화 민화 궁중화가
이에 속한다. 베갯모를 그렸다고 해서 그걸 민화라고 하는 인식은 당시엔 가능하지 않
았다. 다만 자수와 민화는 예나 지금이나 닮은 점이 있다.”


-닮은 점이 뭔가.
“예로부터 민화는 남성의 예술이고 자수는 여성의 예술이었다. 그러다 현대 들어
민화와 자수 모두 여성 예술로 간주됐다. 자수와 민화는 둘 다 실용적 목적을 띠고
있다. 예컨대 민화는 금실, 득남, 부귀, 장수, 출세 등 5가지 기원을 담고 있는데 자수
도 그렇다.”
-지금까지 몇 점을 모았나.
“지금까지 5,000여점 정도 모았다. 개수로는 그런데 문양이 중복된 것도 적지 않
다.”


-베개자수는 어떤 가치가 있나.
“베갯모를 보면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특히 여성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았구나, 또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두려움이 늘 있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앞에 마
음을 길상이라 하고 뒤에 마음을 벽사라 하는데, 나는 거기에 수의 본질이 있다고 봤
다. 수의 본질은 예쁘거나 잘 놓는 게 아니라 정성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리고 이 정성스러운 마음은 엄마라면 누구나 가졌고 수를 통해 표현했다. 우리네 보
편적 삶의 방식이었다.”


-‘베갯모 꽃·수’에는 단순히 엄마의 마음뿐 아니라 베개자수의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베갯모 크기가 한 뼘만 한 걸 감안하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학문적으로는 민화에서 찾았지만 베갯모를 수집하는 골품수집가들한테서도 많
이 배웠다.”
-이 책은 박물관 개관 11년 만에 내놓은 첫 번째 대중서다. 수집 경력으로 보면
좀 늦은 감도 없지 않다.

“원래는 2010년 개관 기념으로 준비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
었다. 미술품에는 전경과 후경이 있다고 하는데, 마치 전경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
다. 실제로 그땐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옛 엄마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이
베개자수만 예쁘다고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 후로 옛 여성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 것은 물론 여러 각도에서 여성의 삶을 공부했다. 이제는 세상에 공개
해도 내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싶었다.”


-수 박물관은 사립으로 알고 있다. 베개자수라는 콘텐츠가 특별히 돈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특별히 베개자수 박물관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

“두 아이의 엄마로서 뭘 가르칠 것인가 고심한 결과였다. 개관 당시만 해도 우리 사
회에 전통문화교육기관이 별로 없었다. 전문가집단, 연구소가 없었다는 말이다. 지금
은 많이 달라졌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괄목할 만큼 많아졌다”
-그래도 전통을 잇는다는 건 대단한 일인 동시에 대단히 고된 일이다.
“유치원 원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본 일이 있다. 전통을 어떻게 가르치는
지 물었다. 답변은 색동옷 입고 절하기, 제기차기, 장구놀이 등 민속놀이 정도였다. 우
리 전통은 좋은 게 너무 많고 자세하게 들려줄 이야기도 너무 많은데 유치원 원장, 교
사가 연구를 어떻게 다 할 수 있나. 어린이전통문화 교육과정이라는 게 요리법이나 마
찬가지인데, 가르치는 연구는 안 돼 있고 그냥 자수가 우리 전통이라고 주입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고단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후회를 한 적은 없나.
“대학원 다니던 1988년도에 중국유학 붐이 일었다. 나도 중국 가서 공부를 해야 되
나, 공부를 그만두기는 싫고 방향성은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 것도 제대로 모
르는데 밖에 나가 남의 것을 배우겠나 생각했다. 솔직히 형편이 안 돼서 못 갔지만 우
리 것을 내실 있게 더 연구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유학을 포기했다. 유학 다녀온 친구
들은 다 교수가 됐다.”


-후회한다는 말인가.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가끔 돈이 달릴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다른 길을 갔으면
좋았을까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지만 더 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를 생
각하면 오래 생각하고 하나를 하면 오래하는 스타일이다. 이 분야가 나한테 딱 맞는
것 같다.”


-책 반응은 어떤가.
“어, 옛날에 본 적 있어. 책으로 나오니까 예쁘다. 그 다음에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게 책을 만들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옛날에 다 썼었잖아. 이 정도.”
-글은 읽지 않고 사진만 훑어본 무성의한 감상 같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딸아이가 시집을 가서 아직 아이를 못 낳았는데 ‘아들 낳기를
기원한 딸기 베갯문’ 이야기를 보고서 딸아이에게 딸기 문양 수를 놓으라고 해야겠
다는 분도 있고, 엄마가 시집간 딸한테 수복강녕을 기원하며 밥그릇에 꽃밥 담긴 수
를 놓은 방석을 선물했는데 막상 딸과 사위가 탐탁지 않게 생각한 터라 엄마의 마음
을 대신 전해주기도 했다.”
-어떻게 전했나.
“밥그릇 안에 핀 꽃밥은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는 엄마의 지극한 마음이다. 옛 엄마
들은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밥을 풀 때마다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덧붙여
밥을 풀 때 꼭꼭 눌러 담지 않으면 남편이 바람난다고도 했다. 엄마들은 밥 푸는 작은
행위에도 의미를 두었다.”


-전통문화가 그만큼 맥을 못 추고 있다는 반증으로 들린다.
“베개는 조선시대 누구나 사용하던 것이고, 그 시절 삶이란 의미나 가치에 대해 챙
겨볼 만큼 여유가 없었다. 우리 현대사 역시 부침이 많아 잘 먹고 잘 살기가 지상목표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2013년 하워드 가드너의 ‘진선미’를 보고 너무너
무 고마웠다. 그는 ‘전통이 강한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다’고 했다. 이런 말 한마디
가 내게는 아주 큰 힘이 된다.”


-전통문화로서 베개자수의 미래는.
“민화와 같은 길을 갈 것이라 본다. 민화는 한때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이제는 세
계적인 것으로 대접받는다. 베개자수는 한낱 베개쪼가리에 불과할 때가 있었다. 지
금은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언젠가는 우리 민화만큼 귀
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베갯모 꽃·수’ 부제는 ‘이경숙 관장의 자수 이야기1’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올 하
반기에 계획돼 있다. 전작에서 충분히 담지 못한 옛 여인들의 삶을 씨줄로 실과 바늘
을 날줄 삼아 들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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