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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한옥마을에서 ‘정몽주의 풍류’를!

SPECIAL 여행 1박2일 정몽주를 느끼는 여행

  • 입력 2021.07.16 00:00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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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구수은 대구한국일보 인턴기자

 

 

경북 영천은 포은 정몽주(1337~1392)의 고향이다. 어머니 영천 이씨가 해산할 무렵 친정인 영천에 와서 포은을 낳았다. 그는 영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친가로 돌아간 뒤로도 자주 외가를 방문한 듯하다. 아홉 살 때의 일화 하나가 전해지는데 배경이 외삼촌의 집이다.
한 하녀가 정몽주에게 ‘남편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데 글자를 모른다’고 하소연하자 아홉 살 난 포은이 한자 써주었다.
‘구름은 모였다 흩어지고 달은 차고 이지러지며 바뀌나 저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편지를 봉투에 넣어서 풀로 붙였는데, 못내 아쉬운 표정이던 하녀가 ‘너무 짧다’고 하소연했다. 어린 정몽주는 다시 봉투를 열었다.
‘봉함했다 다시 열어 한 마디 더하니, 세상에 병 많은데 이것이 상사병인가 하옵니다.’
하녀가 아홉 살 동자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이며 고마워하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포은 정몽주가 벗들과 노닌 곳, 팔공산
고려가 기울어갈 무렵 정몽주는 다시 경상도를 찾는다. 이번에는 팔공산이었다. 정몽주는 야은 길재, 경재 홍로를 비롯해 열세 명의 선비와 팔공산 동화사에 모여 태조 왕건 친필시 등을 수록한 ‘백원첩(白猿帖)’을 만들었다. 왕건의 친필 시는 포은 정몽주가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수백 년 만에 되찾온 것이었다. 이들은 왕건의 시를 감상한 뒤 스러져가는 고려 왕조를 향한 충절을 담은 시 8편을 백원첩에 담았다. 발문은 포은이 썼다. 포은은 ‘포은집’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내가 홍부2년 임자(1372, 공민왕 21년)에 사명을 받들고 경사에 다녀온 이후, 16년 동안 객리로 떠돌아다니느라 겨를이 없어 여러 벗들과 함께 놀지 못하였는데, 오늘 달성 동화사에 와서 머물러 지기들을 만나 한가히 놀았다. - 중략 - 13인 벗이 모두 술을 많이 마시었다.’
왜 하필 팔공산이었을까. 포은이 유년기를 보낸 곳이 인근이기도 했겠지만 팔공산은 고려 왕조와 너무도 깊은 인연을 가진 산이다. 왕건은 팔공산에서 견훤과 싸우다가 죽을 뻔했다. 그때 신숭겸 등의 희생으로 겨우 목숨을 구했다. 나라가 일어서던 시기의 에너지와 행운이 다시 한번 왕조에 깃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옥마을에서 고려 선비들의 풍류를 간접 체험
포은을 배향한 영천 임고서원에서 30분 남짓 더 가면 동화사만큼은 아니겠지만 포은을 비롯해 열 세 선비들이 즐겼던 풍류를 간접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송림 한옥마을이다.
경산시 와촌면에 위치한 송림한옥마을은 팔공산 자락에 폭 안겨 있는 기와집촌이다. 통나무와 황토벽으로 비바람을 막았지만 그 안에는 에어컨, 냉장고, 화장실과 싱크대 등이 설치되어 있다. 여름에는 펜션 내 넓은 잔디밭에 공용 풀장을 설치해 더운 여름철 시원한 물놀이장도 마련되어 있다. 친구, 가족들이 함께 찾아 여름 한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시내와 비교해 낮에도 평균 4도 정도가 낮다.
한복을 입고 돌담 앞에서 자태를 뽐낼 수도 있다. 카페에서 한복을 빌려준다. 다양한 사이즈와 디자인은 물론 가방과 고무신, 갓까지 다양한 소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한옥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서비스다. 

▲ 경산 와촌에 위치한 송림한옥마을 펜션.
▲ 경산 와촌에 위치한 송림한옥마을 펜션.
▲ 경산 와촌에 위치한 송림한옥마을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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