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시골에서 새 인생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박송안 오디너리송드 대표

  • 입력 2021.06.07 00:00
  • 수정 2021.06.07 16:13
  • 기자명 김재현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시 청년들이 시골로 향하고 있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도시 생활, 집 장만, 결혼, 연애조차 하
기 힘든 현실에서 청년들은 새로운 돌파구로 시골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
방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2년 전부터 경북도가 정착금 지원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를 통해 유턴한 청년들만 해도 100팀이 넘는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착해 활기를 잃
어가던 시골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대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경북 경주에 정착한 박송안(32)씨 역시 시골에서 새로운 꿈을 펼쳐나가
고 있다. 그는 경주 양동마을 부근 인동리에 작은 카페와 디자인 작업실을 운영하며, 각 기업들의 아
이덴티티를 담은 로고나 시그니처 등을 디자인하는 통합 브랜딩 사업도 하고 있다. 카페는 지역 방
송 스튜디오로도 사랑받고 있다. 박씨는 “이 곳에서 시간을 천천히 음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며 “지금 시간이 선물같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좀비’가 돼버린 딸의 모습에 놀란 어머니
경북 포항 출신인 박씨는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 건축사무소 디자인 파트에서 근무했다.
여느 청년들과 다를 것 없는 ‘도시 직장인’이었다. 유아교육과를 다니면서 패션디자인을 따로 전공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유달리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을 다니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드로잉 클래스를 열거나 작은 카페에서 자신이 그린 캐릭터를 활용한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훨씬 뛰어난 디자이너들도 많았고, 미대를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
화 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았다”며 “남들처럼은 하지 못하더라도 나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경주에 내려온 것이 2019년 6월. 그의 어머니는 마치 ‘좀비’가 된 것 같이 수척해진 딸의 모
습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계속된 도시 생활에 건강도 나빠졌다. 부모님이 노후 생활을 위해
마련해놓은 양동마을 부근 땅에 카페와 집을 짓고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카페에 디자인 작업실도 마련했다. 건물 내부 인테리어나 공사도 직접 했다.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인사차 잠시 내려왔던 것이 시골에 눌러 앉게 돼 버린 것이다.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대구에서 회사를 계속 다닐 줄 알았어요. 조금만 있다가 금방 떠나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많이 지쳐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시골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죠.”

‘시간이 멈춰 있는’ 양동마을의 매력에 푹
양동마을 어귀에 정착했지만 정작 마을에 대해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 조차도 몰랐다. 카페 오픈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양동마을이 어떤 곳이 알게 됐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지원을 위해 심사 발표 당시 양동마을을 주제로 한 다양한 굿즈 사업을 펼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정작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양동마을이 가진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양동마을 만의 스토리를 풀어낸다면 좋은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론 경주의 신라 유적지에 밀려 양동마을이 소외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그야말로 ‘탈탈 털렸어요’. 의욕만 앞서 시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양동마을을 가까이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했어요. 심사위원들도 그 점을 높이 사주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씨는 양동마을에 대해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고즈넉한 풍경을 간직한 동네’라고 표현했다. 다른 지역의 일부 한옥마을과 문화거리 등엔 상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양동마을 만큼은 자신들의 전통과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피부로 느껴졌다.
박씨는 양동마을의 풍경을 담은 그림 엽서를 비롯해 책갈피, 스티커 등 소소한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양동마을에 대한 기념품이 많지 않았던 터라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했다. 양동마을의 어르신들은 다른 마을처럼 본래의 취지가 변질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동마을을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겠다 공언했다 뒤통수를 치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양동마을 어르신들과 동화되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했어요. 이곳은 모두가 천천히 걷는 마을이니깐요. 그런 느낌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기도 주고 싶었어요.”

‘경주 콩씨’ 감사일기로 코로나 블루 겪는 시민 위로
박씨는 최근 자신이 개발한 ‘콩씨’ 캐릭터로 디자인한 감사일기장(Thanks Diary)를 펴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콩씨는 콩 씨앗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씨앗이 나무가 돼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주 원산의 캐릭터로 지역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이달에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도 출시된다.
1년 365일 동안 매일 쓸 수 있는 작은 일기장에는 박씨가 개발한 캐릭터, ‘콩씨’가 앙증맞게 자리를 잡고 그날의 이야기를 듣는다. 매 쪽에는 단순히 일기장이라는 점을 넘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형식의 옷을 입혔다. 책은 △마법의 콩을 심는 시간 △감사와 함께하는 하루 △날마다 변화하는 삶 △감사의 열매가 맺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마법의 기적 등 5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다. 감사 일기장의 콩씨는 박씨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박씨가 느낀 감정들을 대신해 말해주듯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각자가 쓴 일기가 한 권의 책이 된다는 의미가 있어요. 쓰는 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명언부터 디자인까지 작은 부분도 신경을 썼죠.”
박씨가 감사일기장을 기획한 것은 직접 감사일기를 쓰면서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칠 때, 외톨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주변에서 함께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씨가 경주시보건소와 경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로부터 감사일기장 제작을 의뢰 받았을 때 지체 없이 동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씨가 디자인한 일기장은 보건소의 각종 치유 프로그램에 활용되는가 하면 경주 시민이라면 무료로 제공된다.
“직접 감사일기를 쓰면서 감사한 일이 노트에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쓰는 사람들이 빈 일기장을 펼쳤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의무감에 일기를 쓰는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골 예찬론자’의 소망, 더 많은 청년들이 오길
시골 생활이 마냥 좋기만할까. 물론 도시만큼의 편의시설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고, 마트를 가려고 해도 차 없이는 가기 어렵다. 하지만 박씨는 오히려 시골에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나만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바쁘지도, 대단할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시간이 누구보다 의미 있다고 여기는 그다. 행복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 같아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도시의 생활과 회사 생활이 스스로의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제 시골 생활의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자신감이 없었던 과거의 모습은 도시에 모두 두고 왔다. 보다 많은 청년들이 농촌으로 와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버팀목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시골에 사는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제가 심심한 것도 있거든요.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바랍니다.”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