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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불기심란도(不欺心蘭圖)」이야기

예정원의 '난'이야기 5

  • 입력 2021.05.09 00:00
  • 수정 2021.05.10 14:24
  • 기자명 예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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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신라시대 때부터 난(蘭)이란 글자가 문헌에 실리기는 했지만 직접 분에 난을 심어 기른 것은 조선시대부터라 생각된다.
그중 한국 묵란의 일인자로 추앙받는 추사 김정희는 ‘추사의 방에서 난향이 풍긴다’ 라는 동다송의 내용에서도 알수 있듯 직접 난을 키운 애란인으로 여겨진다.
추사의 작품중 난을 주제로 한 「불기심란도(不欺心蘭圖)」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예전 어는 방송국의 ‘TV진품명품’이란 프로그램에서 추사 김정희의 불기심란도의 감정가가 10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1830년대 후반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기심란도는 가로 22.8cm, 세로85cm의 소품으로 추사가 아들 상우에게 화제(畵題)를 통해 예술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될 마음가짐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예술가 뿐 아니라 일반인들은 물론 특히 난을 키우는 우리 애란인들 또한 불기심란도의 화제가 주는 가르침을 깊이 새겨 볼 만하다. 난을 왜 키우는지 난을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하는지... 난초 한 폭을 침에 있어서도 또 난 한 촉을 키움에 있어서도 자신을 경계하고 돌아볼 수 있도록 숙연한 가르침을 주는 화제(畵題)이다.
추사가 그린 소품인 불기심란도가 10억원이란 적지않은 감정가를 기록한 것은 작품의 뛰어난 예술성 뿐 만 아니라 조선의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추는 인물의 화제(畵題)가 주는 훌륭한 가르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홀로 있을때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하고 언행을 삼감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조선의 선비 추사의 인품과 정신까지 반영되어 후대에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기 난
난초를 그릴때는 마땅히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잎하나, 꽃술하나를 그릴 때도 마음속으로 반성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을 때 비로소 남에게 보여야한다.
작품이란 한번 내놓으면 모든 사람의 눈고 손이 주시하고 지적하는 것이니, 어찌 두렵다고 하지 않겠는가?
난초를 그리는 것은 비록 작은 재주이지만, 반드시 생각을 진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서 출발해야 비로소 그 기본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화제의 요지는 난을 치는 데에 있어서 흐트러진 마음으로 대충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생각과 바른 마음가짐으로 난을 치라는 가르침이다. 자신의 몸을 갈고 닦는 수기를 공부의 근본으로 하는 전형적인 선후본말론적 유가식 가르침이다
결국 수신 이후에 치국평천하로 나아가는 것이니, 결국 난초를 치는 것은 보잘것없는 작은 재주에 불과하나 그 기본 바탕은 치국평천하랄 대업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해 볼 수 있다
난을 배양함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물질만능의 자본주의적 사고에 만연하지 않는 인격도야의 도구로 사용함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난계는 전통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선비들이 곧고 강직한 정신을 계승치 못했고, 선비정신의 단절과 함께 올바른 인격의 스승이 흔치 않은 시대로 난문화는 황금만능과 산업화로만 지나치게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옛날 선비들이 정성으로 난을 키우고 난을 치듯, 난초1촉을 배양함에 있어서도 자신을 경계하고 돌아보아야한다. 우리 정신문화의 바탕인 된 옛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과 산업화가 중용을 이루고, 조화롭게 애란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난문화와 중국, 일본을 비록한 동양의 난문화는 오랫동안 번창하며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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