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중국난 ‘봉교(蜂巧)’ 이야기

예정원의 ‘난’이야기 ❹

  • 입력 2021.04.01 00:00
  • 수정 2021.04.01 11:40
  • 기자명 예정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전통혜란(慧蘭) 명품인 일경구화 ‘봉교(蜂巧)’는 난계 역사에서 명성이 자자한 난으로 중국 강희 황제가 명명을 했다. 하늘과 같이 높은 황제가 어떻게 난초의 이름을 지었을까.


청조 강희제 중기(1960년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이 시기는 중국 절강성 일대에 한창 난 붐이 일어 애란인마다 귀하고 좋은 난을 앞다투어 구입하던 시기였다.


상해 교외의 주가각이라는 고을에 유명한 포목점을 경영하고 있던 방점왕이라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난을 무척 좋아하는 애란인으로 해마다 봄이 오면 난을 몇 마대씩 사서 좋은 난을 골라내곤 했다. 그러나 좋은 난을 골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한 해에 고작 2~3뿌리 정도의 좋은 난이 나오면 잘 나온 것이다.


봄이 오면 주가각 난시장에는 많은 애란인들이 모이는데 이곳에서 난을 몇 마대씩이나 사 온 방점왕은 좋은 난을 골라내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는 며칠이고 사온 난을 골라내다가 힘이 들면 집 부근에 있는 토지신을 섬기는 토지묘(土地廟)에 다녀오곤 했다.


그날도 토지묘에 다녀오는 길에 한 점쟁이가 손을 흔들며 방점왕을 보고 “금년은 운수가 좋은 해라 필히 좋은 일이 생기리라”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방점왕은 흔쾌히 돈을 쥐어주고 계속 길을 갔다. 그러던 중 또 난데없이 난장이가 나타나더니 그를 보고 “올해 수확은 있으나 사람을 사귀고 일을 처리하는데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하고 충고해주었다.

 

 

 

방점왕이 토지묘를 둘러보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나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마대에 담은 난을 하나하나 골라내기 시작했다. 식구들이 모두 식사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들은척도 하지않고 난만 골라냈다. 그러다가 뜻밖에 자기 손에 쥐고 있는 난을 보고 흥분해 “진정 좋은 난이로구나”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손에 들고 있는 난을 보고 또 살펴보았다. 과연 좋은 난의 자질이 충분했다. 진한 녹색잎에 꽃대가 이미 자라 아래 꽃망울은 이미 개화한 상태였다. 적경에 화형은 매판(梅瓣)으로 녹이 진했으며, 봉심에는 투구가 있는 긴변에 설판은 후육이었다. 방점왕이 너무도 좋아 어쩔줄을 몰랐다다. 그는 나머지 난은 한쪽에다 밀쳐버리고 그 난만 이흥에서 구워낸 가장 좋은 토분에 정성껏 심었다. 좋은 향이 풍겨오는 명품중에 명품이었다.


방점왕이 좋은 난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인근에 퍼지자 많은 애란인들이 찾아와 모두가 좋은 난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그중에서 전당포를 경영하고 있던 또 다른 부자 김점왕은 이 난을 보고 또 아무리 봐도 자기가 배양하고 있는 난과는 비할바 없이 좋은 난이었다.


김점왕은 참을 수 없어 방점왕에게 난을 분양할 수 없는가를 물었다. 그러나 방점왕은 일생 처음으로 얻은 귀한 난을 절대 분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난을 가지고 싶었던 김점왕은 친구를 보내 고가를 줄테니 그 난을 절반만 분양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방점왕은 절대 분양해줄수 없다고 거절했다. 며칠이 지난 후 김점왕은 그만 그 난에 반해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의 눈에는 그 난 밖에 없었다. 궁리 끝에 그는 어차피 군자가 되자 못할 바에야 소인이 되더라도 그 난을 가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결국 그는 거액을 주고 불량배를 시켜 그 난을 이틀만에 훔쳐 꽃대를 잘라 버리고 자기가 키우는 난 속에 놓고 함께 배양하였다.
방점왕의 매판난이 도난당했다는 소문이 주가각에 널리 퍼졌다. 상심한 방점왕은 평소 의심스러웠던 김정왕을 고소했지만 김점왕이 이 난을 탐냈다곤 해도 증거가 불충분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실망한 방점왕은 마음이 아프고 격분해 화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무정한 세월은 흘러 1년이 지나 또 새로운 봄을 맞아 난꽃들이 피었다. 김점왕은 자기의 난실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 했으나 오랫동안 친분을 쌓은 난우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친한 난우들이 난을 살펴보다가 작년에 방점왕의 집에서 본 그 난과 같은 난을 보았다는 소문이 방점왕의 귀에 들어갔다. 부아가 치솟은 방점왕은 재산을 모두 날리더라도 반드시 위군자 김점왕을 처벌하겠다고 다짐하고 거액의 돈과 고소장을 법에 가져다주었다. 방점왕이 고소했다는 소문을 들은 김점왕은 난을 훔친 불량배에게 거액의 돈을 주어 외지로 떠나 보냈다. 그리고 또 거액의 돈을 관리들에게 가져다주어 이 사건을 막으려했다. 서로 큰 재산을 가진 부자들이다 보니 서로 관리들에게 거액을 주고 매수해 한쪽은 심사를 못하게 하고 다른 한쪽은 심사를 재촉했다. 이렇게 그들은 전 재산을 관리들에게 날려 결국 방점왕은 포목점의 문을 닫았고 김점왕은 전당포를 잃게 되었다.


주가각 지방법원은 이 안건을 판결하지 못하고 상급에 올려 북경으로 보냈다. 강희 황제가 안건실에서 이 난화 사건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대체 그 작은 난꽃 한분이 무슨 대단한 보배라고 해결하기가 그다지도 힘이 드는가”라며 5일내로 그 난을 북경으롤 대령하라고 명령했다. 5일 후, 난이 황궁에 도착하자 강희제는 난을 아는 여러 관료들을 불러놓고 함께 난을 감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희제의 눈에는 난꽃의 양 부판이 마치 움직이고 있는 벌의 양쪽 날개처럼 보였는데 과연 난데없이 벌 한 마리가 난 주위를 맴돌다가 그 향기로운 꽃에 앉는 것이었다. 황제는 조금 전의 일이 너무 신기해 이 난을“봉교(蜂巧)”라 이름 지어주었다.


강희제는 이렇게 난을 감상하고는 한참 고민하던 끝에 이 한 분의 난을 두 분으로 나누어 싸우지 말고 각각 재배하라고 명령했다. 이후부터 그들의 분쟁은 잠잠해졌다고 한다.
이후 혜란‘봉교’는 난인들의 사랑속에 200여년을 내려오다가 중화민국 초기에 난인들이 이름 앞에 노(老)자를 붙여 ‘노봉교’라 불렀다. 현재는 거의 없어져 구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중국난 ‘봉교(蜂巧)’ 이야기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