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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성형미인도(2)

민복기 박사의 미스코리아 이야기

  • 입력 2021.04.01 00:00
  • 수정 2021.04.01 11:07
  • 기자명 민복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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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복기 박사

 

중국은 피부나 발 외에도 긴 머리에 대한 로망이 대단하였는데 특히 고구려나 신라인들의 긴 생머리에 중국 대륙이 열광하였다고 한다. 신라인들의 머리카락은 중국에 공물로 보내지거나 수출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모발을 탐하는 것을 이야기 하자면 조선시대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시대 때는 머리에 가체를 올리는 것은 사치 풍조의 대명사였다. 심지어 무거운 가체 때문에 13살 어린 신부가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기록(이덕무의 <청장관전서>)이 있을 정도이다. 이런 풍조에 영조와 정조 임금은 “연좌의 죄목까지 써서 이 말도 안되는 풍조를 엄금 하겠다”고 여러 차례 명령을 내렸지만 ‘유행을 어떻게 강제로 막을 수 있겠느냐’는 여론에 밀려 끝내 손을 들고 말았다.


가체를 막자 이번에는 본발(본머리)을 기르는 풍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임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근현대사만 예를 들더라도 1960~70년대에 막대 자로 여성의 스커트 길이를 재고 장발을 단속하였지만 세속 차원의 유행을 정부에서 강제로 막기란 사실상 어려운 것이다.


지난날 전족의 기원인 송나라 최고의 인기 연예인인 춤추는 무희들의 작고 뾰족한 신발에서 시작된 발 다이어트를 상류층 부녀자들이 모방하였던 것은 오늘날 텔레비전 안에 나오는 마르고 늘씬한 아이돌처럼 되기 위해 우리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청나라 말기에 여성인구의 80%가 이상적인 전족 만들기에 시간, 노력, 고통을 감수하였다고 한다. 현대 여성인구의 80%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볼 때 시대는 달라졌어도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과도하게 쫓는 본능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 방학철은 성형&미용에 있어서 최고의 성수기로 불리며 수능이 끝난 이후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뉴스 보도는 매해 나오고 있다. 그뿐 아니라 korea하면 세계적인 ‘성형 강국’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고, 성형관광과 의료관광의 나라로 발돋움하였다. 유행은 돌고 돌며 통제하려는 인력을 벗어나 흘러간다. 오늘날의 이런 성형 문화들도 역사속에 남아 되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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