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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아롱대는 얼꽃 핀 이곳, 그저 어루만질 뿐이학무 걷기학교 ② [목소리 소설] 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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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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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내에서는 한 번도 시도된 바 없는 ‘목소리 소설’ 기법에 착안해 썼다. ‘목소리 소설’은 동유럽 벨라루스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벨라루스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73)가 개척한 장르다. 그녀는 기자 경험을 토대로 수년간 수백 명을 인터뷰해 모은 실제 이야기를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목소리 소설’을 선보여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학무 걷기학교>는 심후섭 신임 대구문인협회 회장과 함께한 ‘집필소재발굴답사 특별팀’의 결과물로 이 소설을 내놓는다.<편집자 주>
옹골져 푸짐한 갈비탕을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운 뒤 식당 문을 나섰다. 진골목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곧 좁장한 골목에 마침맞게 선 짧은 나무 터널로 들어섰다. 무심히 터널을 지날 차였다. 나무 박사인 심 회장이 나무 문외한은 죽었다고도 볼 수 있는 왼 방향으로 꼬고 서 있는 등나무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것 좀 보세요. 이렇게 왼쪽으로 꼬고 있으면 등나무, 오른쪽으로 꼬고 있으면 칡이에요. 왜 갈등이란 말이 있지요. 그 갈등이 칡 갈(葛) 자에 등나무 등(藤) 자예요. 한 놈은 왼쪽으로 또 한 놈은 오른쪽으로 꼬면 서로 숨이 막히겠지요. 숨통이 막히면 불통이 생기고 불협화음이 나게 되어 있는 게 인간사 이치 아니겠어요.”
<이학무 걷기학교> 이학무 교장이 걸음을 멈추고 쾌히 맞장구쳤다.
“아, 그럼요. 맞습니다. 맞아요.”
“흔히 칡을 칡나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칡은 덩굴성식물로 등나무처럼 나무 기둥이 없지요. 등나무는 저들끼리 꼬고 올라가지만 칡은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지요. 자, 갑시다. 오늘 일정의 종착역은 미도다방입니다.”
“미도다방 여사장은 한국휴게업중앙회 대구지회장이지요.” 신문사 밥만 30년 먹은 이 교장이 확인차 물었다.
심 회장은 그것보다는 이것이 좋다는 듯 말했다.
“정인숙 사장님은 시 낭송가고, 시인이고, 최근에는 수필가가 되셨어요.”
“그렇군요.”
미도다방은 대구한국일보 특별기획 <이학무 걷기학교>가 제안하고 심 회장이 기획한 ‘집필소재발굴답사 특별팀’의 마지막 답사지였다. 미도다방은 문인들의 고향으로, 대구 지식인들의 사랑방으로, 시니어들의 회억의 장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운수 대통한 영업점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별다방을 즐겨 찾지만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서 온 젊은이들은 미도다방을 즐겨 찾아 외국인 명소로도 널리 알려졌다.
다섯 계단을 딛고 올라 다방 정문으로 들어서자 신종 코로나 바이학무 걷기학교 ②[목소리 소설] 얼꽃이러스가 무색하게 시니어들로 복작댔다. 아까 심 회장이 추천해 점심을 한 갈비탕 집도 코로나가 아니라면 예약도 어려울 만큼 유명 맛집이라 했는데 정작 그곳은 조용한 절간 같았다. 기습적으로 우리들 일상을 뒤집어놓은 코로나 상흔이랄까. 갈비탕 집도 미도다방도 다행히 갈등 요소는 없었다. 다만 갈비탕 집은 우리들뿐이어서 평온했던 반면 미도다방은 황혼의 묵객들 애애한 담소가 어우러져 아담하기만 했다. “아이고, 심 회장.” “아이고, 신 회장.” 한국영화인대구경북협회 신재천 회장 일행 4인이 심 회장을 반겼다. 영화감독인 신 회장이 카메라 앵글을 갈비탕 집과 미도다방만 번갈아 비춘다면 갈등 장면이 절묘하게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긴 했다.◼갈등(葛藤)
꼭 일주일 전이었다. 이른 아침 심 회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아이고, 기자님. 심후섭입니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잘 계셨지요. 다시 한번 회장 당선 축하드립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왜 일전에 제가 카톡으로 우리 잡지에 한번 모시겠다고 한 일이 있지요.” “네네. 좋지요.” “<이학무 걷기학교>라는 연재물입니다. 지난해 코로나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월 1회 각 분야 명사를 모시고 산이든 도심이든 걸으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고견을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아이고, 좋지요.” “저희는 회장님께서 지난해 코로나로 중단한 ‘집필소재발굴답사단’을 눈여겨봐 왔습니다. ‘집필소재발굴답사 특별팀’을 꾸려 진행하면 어떨까요. 답사 코스는 회장님 편한 곳으로 마련해 주세요.” “아, 좋지요.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심 회장은 언제나처럼 호쾌하게 응대했다. 그리고 상대에게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전매특허처럼 사용함으로써 심 회장의 사람됨을 늘 주지시켰다. 어떤 의도라기보다는 잘 밴 습관인 듯싶었다.
미도다방은 옛 다방을 기준해도 충분히 넓디넓었다. 그 공간을 시니어들이 점령군처럼 점령 중이었다. 별다방이 뭐냐는 듯 코로나가 대수냐는 듯 미도다방은 맵시 좋아 늘 수컷이 꼬이는 어여쁜 아가씨마냥 활기찼다. 조붓한 테이블 사잇길을 물 만난 고기처럼 헤쳐 나오며 주문을 받던 미도다방 사장 인숙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머, 회장님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걸음하셨네예.” “네네. 사장님. 우리 맛있는 약차 세 잔 주세요.” “네. 금방 드릴게예.”
대각선 테이블에 있던 영화인협회 신 회장 입에서 공치사가 나왔다. “안 그래도 우리들 심 회장 이야기 중이었지. 이 사람 양반은 못 되네. 이번 대구문협 선거 때 내가 얼마나 표를 몰아줬던고.” 심 회장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지. 우리 신 회장이 큰 힘이 되었지. 발품을 팔아가며 애를 써주었지. 신 회장 인사하시게. 이 분은 한국일보 <이학무 걷기학교>의 이학무 교장선생님이시네.” “아이고, 반갑습니다.” “네. 도란도란 즐거운 시간 갖고 계십니다. 점심은 맛있게들 자셨지요.” 모던한 검정 틴트 선글라스와 콧수염이 인상적인 신 회장이 명함을 건넸다. 심 회장도 신 회장 일행도 청송 출향 인사들이었다. 심 회장, 신 회장, 이 교장이 담소를 나누는 동안 다방을 휘둘러보았다.
코로나는 모두를 초토화시켜 놓은 것 같지만 미도다방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코로나는 갈비탕 집에는 절망적 정적을, 미도다방에는 희망적 웃음을 주었기로 편파성을 지닌 요물인 듯싶다. 별다방이 숨통을 꽉 조여 질식해버린 우리네 다방. 앉으면 엉덩이가 움푹 들어가는 검정과 갈색 소파들. 그것들이 마주 놓인 틈바구니로 투박한 벽돌처럼 자리한 오래된 사각테이블들. 벽면마다 빼곡히 수놓은 묵객들의 그림과 시 작품들 그리고 우리 민화들. 20세기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미도다방에는 은은한 커피와 향긋한 약차 향이 21세기에도 생명력을 양껏 과시 중이다. 그 생명력의 자양분은 이 많은 시니어들이고, 그렇게 미도다방은 근대와 현대를 분절하고 넘나들고 이어가고 있다.
심 회장은 ‘집필소재발굴답사 특별팀’ 코스로 처음에는 대구 달서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에서 출발해 이육사 무덤까지 오가려 했다가 대구 중구 근대골목으로 바꾸었다. 근대골목을 돌아보면 대구의 근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그러면 대구가 포용의 도시요, 관용의 도시요, 개방의 도시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3.1운동 때 사용한 피 묻은 태극기를 재현해 높다랗게 걸어놓은 동화사 직할 포교당 보현사를 시작으로 옛 복명보통학교, 대구남산교회, 천주교 순교성지 관덕정순교기념관, 일제강점기 선비들 학당 문우관을 지나 길 건너 이상화 고택, 계산예가, 상화 시인의 형 이상정 장군 고택, 계산대성당, 이인성 나무, 3.1만세운동길, 선교사 챔니스 주택, 청라언덕, 동산의료원 외국인 묘지, 신명여학교, 제일교회역사관, 대구화교협회 등을 2시간 남짓 걸으며 답사했다.
쭉 훑어보는 답사에서 심 회장의 말처럼 관용 포용 개방의 대구를 마음으로 읽어내기란, 과문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쉽지 않았다. 우리 선배들의 3.1운동 행적이 두드러진다고 느껴질지언정 실제로는 타향 만 리에서 온 선교사들과 천주교 신자들의 행적이 훨씬 더 많다는 점과 본토박이 대구인들과 미국인 선교사들과 중국인들 그리고 일본인들이 어우러져 살았다는 점에서 대구가 국제도시였다는 것을 머리로 읽어낼 뿐이었다.
“답사를 통해 글감을 길어 올리는 건 오로지 작가의 몫이겠지요.”
길을 잡은 심 회장이 툭 던지듯 말했다. 답사에선 남산교회와 문우관이 눈길을 끌었고 관덕정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남산교회 입구 왼쪽 적벽돌 담벼락에는 교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기독교가 중심이 돼 이끌었던 기미년 대구 독립만세운동 주역들 동판이 걸렸는데 ‘백남채 장로, 김태련 장로와 김용해 성도, 이만집 목사’라고 새겨 있다. 목사를 맨 앞에 두지 않고 김천 출신의 백 장로를 맨 앞에 둠으로써 공헌도 순으로 바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일합방 후 선비들이 의지할 곳이 마땅치 않음을 탄식한 지사적 어른이었던 채헌식, 구달서 두 분이 세운 문우관은 차디찬 자물쇠로 여물게 잠가놔 길손을 썩 반기지 않는 듯해도 성인 어깨 높이의 담장 너머로 뵈는 그 모습 그대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달 수밖에 없는 단상은 주문한 약차가 나와 깨어졌다.
“자, 약차 한 잔 하시지요.”
향긋한 향과 함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심 회장이 권했다. 그러고 보니 근대골목의 유산들 풍경이나 미도다방 풍경이나 꽤 닮았다 싶다.
역사와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역사에는 본질적으로 변곡점이라는 게 박혀 있다. 역사가 연속성을 지닌 듯해도 그 역사를 꾸려가는 사람의 삶은 개별적이라는 점에서 연속성은 그저 역사를 위한 역사의 방편으로써 기능할 뿐이다. 역사를 지극한 역사로 추켜세우는 것은 분절되고 파편화된 인생살이 중 특기할만한 한 대목으로써 변곡점이 강조될 때이다. 역사는 그러니까 평시에는 분절하고 넘나들고 이어가는 미도다방의 무심한 일상이면서도 누군가에 의해 특정 장면, 특정 시점이 강조됨으로써 그 기능을 극대화한다. 그것이 일상을 뒤흔들어놓는 변곡점이다. 이 변곡점의 속살은 문우관 담벼락에 바투 선 배롱나무를 닮았다.
배롱나무는 100일 동안 개화와 낙화를 반복하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통념을 깨버린다. 껍질이 없어 기둥과 가지에서 반들반들 윤기가 흐른다. 기둥을 매만지면 분홍 꽃들이 부끄러운 듯 파르르 떠는 것 같다고 해 간지럼나무라고도 하고, 재주 좋은 원숭이도 아차 하면 떨어지기 십상인 나무라 원숭이나무라고도 한다. 속살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나라한 나무지만 그럼에도 꼴이 하도 고상하여서 솔직담백한 나무라는 인상만 준다. 불결함은 없고 우아함만 있는 것이다. 이렇듯 상식을 여지없이 깨는데도 진상이 아니라 왜배기인 것이 변곡점인 것이다. “자, 이제 가시지요.”◼◼배롱나무
오후 2시 5분 전이었다. 심 회장은 인근 다른 다방에서 열리는 모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이 교장이 인사를 건넸다. 미도다방을 나서자 건너편에 북향화가 봉긋하게 풍성했다. 북향화는 우리에게 목련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북향화는 북쪽을 향해서만 피기로 조선조에는 저 한양 임금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나무라 해 충절수(樹)로 사랑받았다. 실은 꽃망울치곤 큰 목련의 봉오리가 남향 빛에 절로 숙여진 것뿐이다. 저 북향화는 내일 새벽이라도 새봄을 알리며 흰 꽃을 피어올리리라. 심 회장이 북향화 앞을 지나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롯이 지역 후배들을 위해 ‘집필소재발굴답사단’을 운영한 심 회장의 뒷모습이 꼭 북향화 같다. 오늘 지나온 3월 이 길을 응시한다. 사철 아롱대는 얼꽃 핀 이곳, 그저 어루만질 뿐.◼◼◼북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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