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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후배 작가들 위한 답사해설 봉사 우리시대 무엇을 할까 고민 끝에 나와”

이학무 걷기학교 ① 심후섭 신임 대구문인협회 회장

  • 입력 2021.03.31 00:00
  • 수정 2021.04.01 10:18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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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무 걷기학교>는 지난해 기획 단계부터 심후섭(68·아동문학가) 대구문인협회 회장의 행보를 주목해 왔다. 당시엔 두 가지 점이 이목을 끌었다. 첫 번째는 심 회장은 지역에 기반을 둔 작가로는 드물게 글로써 일가를 일군 경력을 가졌다. 대구라는 지역과 지역색을 훌 털어버리고 또 일부는 무너뜨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 반열에 오른 그에게는 남다른 문학관과 인생관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짐작했다. 두 번째는 43년간 초등교사와 작가의 삶을 병행하다 정년에 맞춰 교직생활을 마감한 뒤, 그는 대구지역 문인들을 대상으로 격주 1회 두 발로 걷고 지하철로 이동해 다시 걷는 방식의 ‘집필소재발굴답사모임’을 꾸려 운영했다. 참가비도 해설료도 무료였다. 오로지 동료 작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봉사에 나선 것이다. 복병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를 만나 주춤대다 결국 잠정 중단을 선언했지만 17회 동안 평균 100명이 참가해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12월 30일 제14대 대구문인협회 회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우편 투표 방식으로 치러진 대구문협 사상 초유의 선거에서 역대 최다 투표율(92%)과 득표율(71%)을 기록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우리는 이제 한 가지를 더 묻기로 했고, ‘잘 여문 작가’ 심 회장에게
‘집필소재 발굴답사 특별팀’을 제안했다.

●‘집필소재발굴답사모임’은 수토 여행 벤치마킹?
-특별히 대구 중구의 근대유산들을 ‘집필소재발굴답사 특별팀’ 코스로 잡은 까닭이 있습니까.
“당초 계획은 제18차 답사모임을 사전답사하는 의미에서 진천동 선사유적 일원으로 잡았습니다만, 대구의 최근 모습과 정신을 돌아보기에는 반월당역을 중심으로 한 중구 일원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꾸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곳에는 천주교 박해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는 관덕정, 조선시대 당파를 초월하여 상대방을 수용해준 상덕사, 기생 출신으로 사회사업가가 된 김울산 여사의 흔적, 시인이자 독립투사였던 이육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 근대화가인 이인성, 근대서예가인 석재 서병오와 박기돈,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 서상돈과 김광제 선생의 흔적, 기독교와 가톨릭 선교 흔적 등 많은 집필소재가 산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집필소재발굴답사모임’은 꼭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신성한 터를 찾아가 참배하는 국토 순례인 수토(搜討) 여행이나 스님들의 산철(승가의 유행기)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시절 고향 경북 청송에서 한학을 배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 수토 여행을 벤치마킹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선비가 선비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지역의 명승지와 유적을 찾아 기(記)와 시(詩)를 남긴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이곳 경주최씨 마을의 백불암(百弗庵) 최흥원(1705∼1786) 선생 댁으로 안동의 대산(大山) 이상정(1711∼1781) 선생이 방문하여 함께 팔공산 일원을 돌아보고 이때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엮은 기행문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까운 달성군 구지면에는 이로정
(二老亭)이 있는데 이곳은 조선 전기의 김굉필(1454~1504)과 정여창(1450~1504) 선생이 서로 오가며 학문을 논하고 나라 걱정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후학들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은 탁영(濯纓) 김일손(1464-1498) 선생의 두류산(지리산) 기행시입니다.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거창의 오도산(吾道山)도 한훤당과 일두 선생이 이곳을 답사하고 오두산(烏頭山)을 바꾸어 부른 데서 기인한 이름이라고 전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로 보면 지역의 명승지와 유적을 답사하여 그곳에 서린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귀한 가치를 지닌다 하겠습니다.”

-‘집필소재발굴답사모임’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요.
“실은 제 개인적인 욕구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대구에 온 것은 1970년인데, 대구교육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생소한 지명이 많아서 이곳 친구들에게 물어보곤 하였는데 대개는 저와 비슷한 처지여서 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제가 직접 찾아다니며 물어보곤 하였습니다. 그 뒤 이를 바탕으로 동화 작품에 원용할 수는 없을까 하여 보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었으니 한 50여 년 가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셈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잠정중단 상태지만 지금까지 몇 회에 걸쳐 몇 명이나 참가했습니까.
“그 동안 저 혼자 진행한 것까지 합치면 수백 회는 됩니다만 최근 대구문협 회원들과 2019년과 2020년 두 해에 실시한 모임만도 17회가 됩니다. 매회 60명에서 100여 명이 참석하는데 둘레의 권유로 매회 새로운 참여자가 나타납니다. 지금도 어서 이어가자는 연락이 자주 옵니다.”

-코로나 시대 전략은 쏟아지는데 성과는 영 시원찮다는 얘기도 적지 않습니다.
‘집필소재발굴답사모임’은 어떻습니까. 구상하면서 기대한 일이 있을 것이고, 실제 진행했을 때 뜻하지 않은 일들도 있을 텐데 말이죠.
“모임 운영 기준이 있습니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몇 명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면 그에 따랐습니다. 그러한 지침이 없을 때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에서 하루에 10명 이상 나오거나 오후 기온이 영하 3, 4도 이상 되면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또 토요일과 일요일 중 어느 날이 참석률이 높은가를 짐작하여 오후 2시부터 두어 시간 진행하였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마치고 집단으로 식당에 가는 일을 자제하였습니다.”

-‘집필소재발굴답사모임’ 운영에 있어 걷기와 대중교통 이용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요.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움직임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적당히 걸어야 건강에도 좋다는 점을 고려하였습니다. 또한 걸으면서 사고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함께 걸으면서 대화하는 가운데에 아름다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모든 일에는 다 양면이 있지 않겠습니까. 함께 걸으면 개인사고와 집단사고가 동시에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리고 모임의 전체 흐름은 일방적으로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참가자에게 골고루 해설 기회를 드려서 상호 상승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집필소재발굴답사모임’ 운영은 대구문인협회 회장 출마공략이기도 합니다. 답사단의 최종 목표는 무엇입니까.
“궁극적인 목적은 문인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가운데에 자신의 집필역량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참된 문우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선거공약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전체일 수는 없습니다. 낙선하여도 참된 지기를 만나기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계속할 예정이었으니까요.”

●한국 대표 아동문학가에 오르기까지 비결은
-주제를 옮겨 ‘심후섭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지요. ‘우리나라 성인 40%는 1년에 책을 1권도 안 읽는다’는 통계가 나온 게 3년 전입니다. 자본주의 시대 작가로 산다는 것, 특히 전업 작가로 산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회장님은 우선 한 가지는 극복한 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80여 권의 책을 내고, 한국의 대표 아동문학가로 예우를 받지 않습니까.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작가로서의 타이틀이 아니라 이 시대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훌륭한 작품은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기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 작가 앞에 ‘지역’이란 수식어가 달리면 여러모로 불리한 세태 속에서도 지역을 넘어 전국적 지명도를 갖춘 작가가 됐습니다. 회장님의 문학관은 무엇입니까.
“흔히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하는데요, 이는 ‘가장 자기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일 수도 있다’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그동안 소 이야기, 나무 이야기, 전설이나 설화 이야기, 우리 둘레 인물 이야기 등에 관심을 가지고 매달려 왔습니다. 지금은 새 이야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새 또한 우리 사람과 하나 다르지 않은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 대한 지혜를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고 봅니다.”

 
 

 

-작가도 사람이고 다른 직군의 사회인도 사람인데, 평생을 문학가로 살아온 분으로서 사람은 어떠해야 좋다고 보십니까. 사회인으로서 사람을 묻는 것입니다.
“속담에 ‘성인도 시속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회와 전혀 동떨어진 세상은 없다고 봅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문제의 책임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모든 문제의 시작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항상 반성하며 열심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대구문인협회 회장에 출사표를 던진 까닭은
-대구문인협회 회장에는 세 번째 도전 끝에 당선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구문협 회장에 연속해 출사표를 던진 까닭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둘레의 권유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번 겪어보면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번째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에는 다시 나와야 한다는 요청이 들어와 회원 권익 향상을 목표에 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회원들에게 발표 기회를 많이 드리고 용기를 드리기 위해 호소한 결과 뜻밖의 당선을 얻게 되었습니다.”

-현재 대구문협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까.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고령화를 지적하는 분이 많이 계시는데 이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우리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부단한 연수로 그동안 쌓아온 경륜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데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선거 구호도 ‘도와드리는 대구문협, 섬기는 심후섭’으로 했더랬습니다.”

-대구문협 회장으로서 포부는 무엇입니까.
“회원의 실질적인 권익 향상을 위해 회원 작품집 목록을 각급 학교와 공공도서관에 제공하여 널리 홍보하고자 합니다. 또 회원 운영 업체를 중심으로 작은 문학사랑방을 조성하여 서로 교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회원들의 부단한 연수를 위해 컴퓨터 활용 연수, 각 장르별 창작 연수에도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소재발굴답사모임을 통해 집필소재를 많이 찾고, 창작 의욕을 고취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대구문협 회장도 ‘심후섭 작가’의 여정일 것입니다. 뒷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나중에 오래오래 기억되는 작가, 독자가 다시 찾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웃음)”

■심후섭 대구문인협회 회장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마을 서당에서 ‘명심보감’ ‘소학’ 등을 배우며 독서를 즐겼다. 대구교대 학사, 경북대 교육대학원 석사,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박사를 졸업했다. 대구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지냈다. 제1회 MBC창작동화대상, 한국아동문학상, 한국일보 한국교육자대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의로운 소 누렁이’ ‘미끼 없어도 잡을 수 있다는데’ 등이 있다. 동시 ‘비 오는 날’과 ‘꽃눈’은 각각 초등 4·5학년 국어교과서에, 동요 ‘외가길’은 초등 3학년 음악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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