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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외길 46년, ‘진짜’가 되려고 신라 시대 머리까지 연구했죠”이 사람심선자 달구벌 명인
김채은 객원기자  hankookd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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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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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테리어에 속으면 안 된다. 이 미용실에서 다짜고짜 “이 연예인처럼 해주세요”하고 고집을 부리면 “다른 가게에 가보시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46년 동안 미용 가위를 잡은 명장의 자존심이다. 특정 연예인의 머리를 해주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으면 단호하게 거절한다.
지난해 7월 대구시는 산업 현장에서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기술인 지위 향상에 공헌한 ‘달구벌 명인’을 선정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미용 직종 심선자(68·상희미용실 대표) 명인이다.
“미용 자격증을 따면 미용사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전문가가 될 수는 없죠. 제가 46년 동안 미용가위를 잡으면서 내내 마음에 공글린 생각입니다.”
꿈을 품고 대구로 온 청년
심 명인은 ‘생존’을 위해 미용기술을 배웠다. 취업을 위해 친구들과 고향 강원도를 떠나 대구에 내려왔다. 강원도에서 대구로 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미 대구로 떠날 준비까지 마친 심 명인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심 씨는 대구의 한 미용실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무보수였다. 오전 6시부터 오전 12시까지 기술을 배우는 대가로 무보수로 일했다. 휴가는 1년에 하루밖에 없었다. 쉬는 날에는 함께 대구로 온 고향 친구를 만나 서로에게 의지하고 꿈과 목표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품었다. 힘든 시기를 같이한 친구는 어느덧 50년 지기가 됐다.
“가위를 잡아보는 것이 견습생들의 소원이었어요. 어깨너머로 원장님의 가위질과 파마 롤을 감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자신의 가게를 내는 날을 꿈꿨죠.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견뎌낸 거죠.”
머리를 만지기도 쉽지 않았다. 견습생들이 손님의 머리를 만질 수 있는 때는 머리를 감겨줄 때가 다였다. 맡겨지는 일은 대부분 허드렛일이었다. 심지어는 아기를 돌보는 일도 했다. 그 시절엔 별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심 명인은 견습 생활 1년 만에 가위를 잡았다. 견습생들보다 일찍 가위를 잡은 것이었다. 원장님이 그의 열정을 인정해준 결과였다.
“다른 견습생들이 질투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위축되지 않았어요. 미용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거든요. 그때 이미 천직이라고 생각했죠.”
미용실을 옮겨 3년 가까이 일한 후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그의 가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 시내에서 유명해졌다. 80년대 후반에는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가게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였다. 궂은일부터 시작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 30대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날은 손님이 너무 많아서 한창 영업을 하는 시간대에 가게 문을 닫았어요.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눈알이 핑핑 돌고 다리가 떨려서 도저히 가위질에 집중할 수가 없었거든요.”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
심 명인은 46년간 미용을 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했다.
“깊이를 알면 부족한 부분을 더더욱 절실하게 깨달아요. 그저 몇 달 정도 배운 사람은 ‘이제 마스터했다’고 생각하죠.”
심 명인에 따르면 미용은 5년 이상 배워야 진짜 경력이 시작된다. 그 정도 경력은 쌓아야 그 사람이 가진 감성과 손끝에서 실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심 명인은 한 분야에 대해 꾸준히 파고들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인 정신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그 분야에 내공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손님이 의자에 앉으면 손님의 마음에도 들면서 동시에 보기에도 좋은 머리 스타일에 대한 경우의 수가 빠르게 머릿속에 떠올라요.”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심 명인의 손길을 거쳐 나온 결과물은 뭔가 다르다. 빛이 프리즘을 거쳐 굴절하는 각도가 다르듯 같은 기술을 사용해도 미용사의 역량과 감각, 성격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심 명인이 고전머리를 연구하게 된 것도 미용분야에 몰두하다 보니 우리나라 머리의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는 2005년부터 고전머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어디에 쓰려고 연구를 하나요?”라고 물어온다. 고전머리는 옛날 것이고 연구를 해서 쓰일 데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곤 한다. 심 명인은 고전머리를 통해 우리나라 머리 스타일의 변천 과정이나 형식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대구의 미용사 중에서는 가장 먼저 고전머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고전머리에는 선조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많이 가미돼 있다. 파마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기교는 다 사용되어 있었다.
고전머리는 현대머리와 관련성이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아함과 품위 있는 느낌을 주는 업스타일의 기본이 되는 것이 고전머리다. 고전머리를 공부하면 업스타일을 구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이해 정도도 높다.
“고전머리는 우리나라 머리 중 기본이자 바탕이 되는 머리에요. 연구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흥미롭고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우리 미용실에서 일해볼래?
오랜 세월 미용업계에서 일해오면서 제자들도 양산해냈다. 한국인 제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제자도 있다. 첫 외국인 제자는 베트남 출신의 새댁이었다. 통장으로 일하면서 여러집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베트남 출신의 새댁의 집에 들러 이야기를 나눴다. 새댁은 한국에서 직업을 갖고 싶어했다. 심 명인은 자신 밑에서 미용을 배워볼 것을 권유했다.
새댁은 너무 좋아하며 심 명인의 제자로 들어왔다. 제자를 가르치며 느낀 것은 베트남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과 성격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우등생 면모가 강했다. 서양의 미용기술을 따라가기 바빴던 우리나라가 미용계의 최강자가 된 것은 이 같은 면모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심 명인을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베트남 제자들은 미용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가르침을 흡수하는 속도는 빨랐다. 우리나라 사람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은 한국어 능력뿐이었다. 첫 제자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이후에도 다문화 미용인을 양성해 냈다. 한 제자는 ‘대구시장배 미용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라마다 가진 기술과 스타일을 결합해 새로운 스타일을 창작해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고전머리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를 하고 있었던 명인이기에 언젠가 이뤄낼 가능성이 충분한 꿈이었다.
“미용사가 아닌 저는 상상하기 힘들어요”
지난해 7월, 심 명인은 달구벌명인으로 선정됐다. 심 명인이 달구벌명인으로 선정됐을 때 누구보다 기뻐해 준 이들은 ‘심사모’ 회원들이었다. ‘심사모’는 ‘심선자를 사랑하는 모임’이다. 심사모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미용기술에 대해 공부하고, 정보교류를 한다. 처음에는 이름이 없는 모임이었다. 이름을 정하기로 하고 회의를 하던 중 회원 중 한 사람이 ‘심사모’가 어떻겠냐고 의견이 내면서 모임의 이름은 ‘심사모’가 됐다.
심 명인의 꿈은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서, 후배 양성에 힘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미용은 그의 삶에서 뺄 수 없는 부분이 됐다. 미용사를 안 했다면 어땠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지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입문할 때는 생존을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미용을 좋아하고 있다.
“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후배들에게도 인정받고 있어요. 미용 덕에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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