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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천변길·‘반값’ 한우의성의 숨길 수 없는 매력

의성 남대천 둘레길과 마늘 한우

  • 입력 2021.03.01 00:00
  • 수정 2021.03.11 11:44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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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신공항’을 검색하면 의성이나 군위보다 구미가 먼저 뜨는 경우가 많다. 지도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공항이 들어설 자리가 의성과 군위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지역이지만, 왼쪽으로 해평면이 접해있다. 해평은 선산과 이웃해있고, 선산은 구미에 속한다. 그만큼 거리가 가깝다. 구미는 큰 공단이 형성된 지역이어서 통합신공항의 혜택을 가장 톡톡히 누릴 지역으로 손꼽힌다.

 

▲ 남대천 둘레길 안내판.
▲ 8) 언제 먹어도 맛있는 마늘한우.

의성이 배출한 경제전문관료, 박서생

세종 임금의 치세를 들여다보면 선산과 의성의 인연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태종의 권농정책을 이어받은 세종은 나라 안에서 가장 선진화된 농업 지역의 농법을 채록해 농서를 편찬하는 한편 일본의 수차 도입을 시도하고 권농 교서를 내렸다. 임금에게 명을 받아 권농정책의 선두에 섰던 인물을 차례로 꼽으면 ‘농사직설’을 편찬한 정초와 박서생, 수차 제작을 책임지고 일본의 수차를 보기 위해 박서생과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김극유, 후일 권농교서를 작성한 하위지였다. 이들 모두 선산 출신이거나 선산과 인연이 있었다. 이중 박서생은 의성 비안면 출신으로 길재의 제자였다. 지금의 반도체나 전기차 못지않은 중요 산업이었던 농업 발전의 중책을 선산과 의성의 선비들이 맡았다.

▲ 마늘한우.

 


이 좁은 지역에서 경제 분야의 중책을 맡은 관리가 집중적으로 배출한 것은 낙동강의 역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영남대로가 의성과 선산을 관통했다. 특히 선산은 양산에서 밀양 구간과 함께 두 개의 나루터가 품고 있는 강줄기가 영남대로와 나란한 지역이었다. 선산은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사람과 돈이 몰리고, 농업기술이 발달했다.
조금 상상력을 발휘하면 두 개의 관영나루를 품고 영남대로와 나란히 이어졌던 낙동강변의 강둑은 번드(bund)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번드는 ‘항만 거주지 특유의 수변 지역’으로 19세기 영국이 동아시아로 침투하면서 생긴 공간이었다. 사람과 배가 오가는 지역은 자연스럽게 사업 중심지가 되었고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상하이 황푸강의 번드가 가장 유명했다.
돈이 생기면 교육에 투자하는 한반도인의 특성을 따라 야은 선생의 학교 교실에는 학생들이 그득하게 들어찼다. 의성이 자랑하는 박서생이 탄생한 근본 원인도 인접한 동네가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 되면서 살림살이가 대폭 좋아진 까닭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박서생이 태어난 비안면도 중심부에서 선산 쪽으로 치우쳐 있다.

 

남대천변 둘레길, 밤에 걸으면 더 황홀
나루터와 영남대로가 남긴 흔적은 지금도 만만찮다. 밀양은 애초에 동남권신공항의 후적지로  지목되었고, 선산과 인접한 곳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경제관료 박서생을 탄생시킨 비안은 통합신공항이 들어설 자리로 선정됐다. 평행이론이 성립된다고 하면 지나친 상상일까.
의성은 선산과 지리적으로 가까울뿐더러 낙동강으로 맺어진 인연 역시 각별했다. 의성에는 낙동강에서 흘러내린 두 개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남대천강과 위천강이다. 문경에서 발원한 강은 낙동나루와 여차니진을 거처 의성 단밀면의 낙정나루로 흘러내렸고 큰 강은 두 개의 지류를 만들어 의성 깊숙한 곳까지 물길을 냈다.
선대의 역사적 경험은 후손들의 유전자에 특별한 성향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의성 사람들은 선산과 인접한 곳에 공항이 들어서는 것에 적극 찬성했고, 선산과의 옛 인연을 기억하는 까닭인지 낙동강과 이어진 하천 걷기를 즐긴다. 의성에서 가장 유명한, 혹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둘레길은 남대천 강변을 걷는 길이다. 길은 의성전통시장으로 이어진다. 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하면 남대천과 전통시장을 포함한 7.5km 길이의 산책로를 완성할 수 있지만, 걷기를 크게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남대천에서 전통시장까지만 해도 넉넉하다. 숲과 하천, 도심을 두루 구경하고 즐길 수 있다. 이른 봄에는 새싹이 움트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많아 먼 데서 단풍놀이를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두충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숲길은 사진 촬영 명소로 소문난 지 오래다. 단, 터널은 여름과 가을에만 만들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야간 산책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의성군은 지난해 3월부터 남대천변을 따라 야간 산책이 가능한 둘레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남대천 의성교에서 출발해 구봉2교 구간이다. 왕복 4km로 데크로드, 자갈길, 등산로 데크계단을 비롯해 쉼터 3개나 만들었고, 왕벚나무와 경관조명 등을 추가로 설치했다. 통합신공항 유치가 한창인 즈음에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에 밤늦도록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형성했다는 건 무의식 깊은 곳에 내재한 선험적인 의식이 뜨겁게 끓어오른 까닭이 아닐까. 남대천변을 걸으며 이런 상상을 하면 우리의 감각과 의식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의 어느 시간대로 부유하게 될지도 모른다. 걸어서 조선으로 가는 것이다!

 

▲ 의성군 봉양면을 가로지르는 위천강 천변을 산책하고 있다. 의성에는 남대천과 위천이 흐른다

서울 손님들 “한우가 반값이네!”
의성은 공항과 관련해 영내관사를 비롯해 항공 물류단지와 항공 정비 산업분야, 농식품산업 클러스터와 수출지원센터 유치를 확정했다. 대개 국제공항이 들어서면 기업이 함께 오기 마련이다. 공항을 거점으로 거대 기업이 성장하거나 특정 산업군이 형성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의성에도 그런 변화가 올 것이지만, 100년 후에도 변함없이 의성 혹은 인근 지역에서 특산품으로 남아있을 농축산 식품은 두 가지일 듯. 마늘과 한우. 특히 의성에서는 마늘을 먹인 마늘한우를 생산한다.
마늘한우는 최근 대박이 터졌다. 골프 덕분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로 골프장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의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구와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골프 손님이 내려온다. 그중에서도 마늘한우와 관련해 서울 손님들의 호응이 뜨겁다. 의성축협이 직영하는 '의성마늘소 덕향'의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에서 먹는 한우 가격과 비교하면 60%에 안 되는 가격에 마늘한우 특유의 깊은 맛까지 더해져 한번 먹어보고 나면 나중에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의성까지 내려온다”면서 “반값에 먹는 최고급 한우라는 칭찬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한우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 일본 와규와 비교해도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지만, 와규와 비교할 때 수출 실적은 미미하다. 특히 하늘길이 열리면 의성의 마늘한우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세계로 수출될 역량이 충분하다. 의성축현 관계자는 “아직은 소수이긴 하지만 수도권에서 마늘한우 투어를 내려오는 것처럼, 하늘길을 따라 아시아 인접국에서 의성으로 마늘한우 투어를 올 날도 상상해본다”면서 “와규처럼 마늘한우축제를 연다면 세계적인 음식 축제로 발돋움할지도 모른다. 한우, 그중에서도 마늘한우의 경쟁력은 높다”고 말했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지만, 믿는 사람은 철석같이 믿는다. 마늘한우를 먹어본 사람들이 그렇다.
의성은 현재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은 노인 인구 비율이 높기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지역이고 소멸 위기 지역이라는 초라한 타이틀까지 머리에 이고 있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범상치 않은 지역이다. 전국 어디서든 안 키우는 곳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작물인 마늘을 특산품으로 키워내고, 소에게 마늘을 먹여 가장 독특한 한우 브랜드를 만들어낸 아이디어와 실천력에서 이 지역이 가진 잠재적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먼 훗날 지금의 시간을 돌아보면 마늘과 마늘한우을 키워낸 저력과 공항 유치를 위해 내뿜은 열정은 모두 미래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나타난 임계현상으로 읽히지 않을까.

▲ 의성하면 마늘, 그리고 마늘 한우.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섭섭하다. 마늘 계란도 오래된 특산품이다. 의성축산 관계자는 “십수년째 대도시 대형마트에서 인기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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