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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만큼 중요한 ‘코로나 우울’ 방역

발행인 칼럼

  • 입력 2020.12.23 00:00
  • 기자명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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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착지 없는 비행 상품이 나왔습니다. 해외여행에 목마른 이들을 위해 고안한 이벤트인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호응이 큰 반면 종착지 없는 비행 상품을 소개한 기사에 악플도 많이 달렸습니다. ‘ 그냥 가만히 집에 들어앉아 있게 놔두지 뭘 저런 행사까지 하는가’ ‘그냥 참고 지내라’ 하는 댓글이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고 해서 기분을 축축한 채로 내버려 두는 건 좋지 않습니다. 가라앉는 기분을 되살리는데 가장 좋은 걸 꼽으라면 여행, 스포츠 경 기 관람, 전시회나 연극 관람 같은 문화 활동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문화와 스포츠인 데, 이 분야는 늘 인류에게 위안과 활력을 선물했습니다.

강원도에 가면 삼척마이스터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오래 전 이 학교가 영동 지역(대 관령 동쪽) 고등학교가 모여서 펼친 육상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찍은 사진에는 7월 13일이라는 날짜가 박혀 있습니다. 여기까 지 들으면 ‘육상대회 하면 보통 5~6월이나 가을에 열리는 것 아닌가. 고등학생들이 참여했다면 프로대회가 아닐 텐데, 주최 측이나 여기에 참여한 학생들이나 정말 대단 한 열정이다’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폭염에도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열정은 젊음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풍경일 것입니다.

영동에서 육상대회가 열렸던 그해 3월에 대전의 모 초등학교에서 특별한 편지 한장 이 학부모들에게 배달됐습니다. 교장이 직접 펜을 들어 쓴 편지에는 대전 지역 학교들 이 단체로 풍금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학부모들이 조금씩 기부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햇볕 그득한 봄날에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장면은 그 어떤 프로 가수의 콘서트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런 봄날에 어느 화가가 꽃수레를 그렸습니다. 그림 속에는 꽃을 가득 담은 수레와 그 앞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꽃장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여름날의 육상대회, 풍금을 사려고 모금을 하는 교장선생님, 봄날에 꽃을 사 가는 사람들, 이렇게 다 모아놓고 보니 코로나로 여러 가지 제약 아래에 있는 지금보다는 낭만적인 일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사, 혹은 풍경이 펼쳐졌던 해는 놀랍게도 1952년이었습니다. 꽃장수 는 1952년의 풍경을 김환기 화백이 그렸고, 대전에 있는 초등학교 교장선생은 3월에 편지를 썼습니다. 영동에서 열린 체육대회가 끝난 후 남긴 기념사진에는 1952년 7월 13일이라는 날짜가 박혀 있습니다.

전쟁의 와중에도 이런 일상적인 활동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전쟁이 꼭 전장에 있는 병사들만 죽이고 부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 모두 누군 가의 아들이고 형제였습니다. 전쟁이 주는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나머지 지역에 있는 분들에게도 전달됐습니다. 세계 대전에서도 후방 지역에서 전장 소식 때문에 심장마 비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1990년에 이라크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전장 인근 주민들의 심근경색 발 생 빈도를 조사해 봤더니, 심근경색 발생률과 포격 횟수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 습니다. 폭격이 시작되면 심근경색도 늘어난다는 분석입니다. 전쟁이 아니라 자연 재해에서도 이와 비슷한 통계가 존재합니다. 1994년 LA 부근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뜻밖에도 지진으로 사망한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동일한 시간대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했습니다. 그리고 911 사태 직후 심장부정맥 발생이 두드러진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 증폭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통계에 따라 하 루의 기분이 좌우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심리적 영향을 받습니다. 그저 기분이 상하는 수준을 넘어서 건강을 위협하는 ‘나쁜 뉴스’입니다.

일상의 기억과 감각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어쩌면 본능일런지도 모릅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일 것입니다.

코로나가 없는 것처럼 일상으로 복귀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일상의 느낌’을 살리 는 것이 필요합니다.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고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의 일상을 이어 가는 의지, 그리고 아이디어가 코로나 방역 못잖게 중요합니다. 올해 코로나가 주춤한 틈을 타 개최한 효콘서트가 지금도 칭송받는 것도 코로나가 불러온 심리적 상처를 다소나마 해소한 공적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집 앞 산책하기, 마스크를 쓰고 서라도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대화 나누기, 비행기 는 못 타더라도 가까운 교외로 드라이브 나가기 등, 코로나19와 코로나 우울증 방역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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