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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에 숨통 틔운 48년 야학 운영 “코19에 막힌 숨통도 틔우고 싶어요”

인생3막

  • 입력 2020.12.14 00:00
  • 기자명 김선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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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희 (주)크리진블루 대표

잠잠하던 포격이 다시 시작됐다. 포화는 도시와 교외를 가리지 않는다. 그제는 길 건 너에 포탄이 떨어져 불바다가 됐다. 전세계 TV로 생중계하던 걸프전 바그다드 장면이 아니다. 코로나19와 전쟁 아홉달. 전세계와 한국, 서울과 곳곳, 대구 상황이다. 멈 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포화의 유일·안전한 대피소는 마스크다. 팬데믹 전쟁이 일상 화한 시대, 마스크가 생활 필수품이자 생존 필수품인 시대다.

지난 14일 대구 달서구 성서로 37. 성서2차일반산업단지인 이곳은 휴일에도 찰칵 이는 기계음이 쉬지 않는다. 팬데믹 전쟁의 ‘1급 군수품’ 마스크 생산 공장이다. ㈜크 리진블루는 ‘팬데믹 군수시설’인 셈이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투명 유리벽 너머 기 계들이 바쁘다. 근무자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직원은 모두 정규직 15명. 이 중 절반 정도가 휴일 특근 중이다.

마스크대란 보고 ‘큰일이구나’

“급히 들어온 주문이 있어 휴일에도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만큼은 아니겠지만 건강 용품 제조 현장이기 때문에 락커룸에서부터 각 공정 라 인까지 청결에 최우선을 둡니다. 마스크는 섬유 제품의 특성상 냄새나 습기가 배지 않 도록 해야 하므로 온·습도 조절, 청결 유지가 중요합니다. 원재료부터 엄격하게 보관과 제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값싼 수입품을 포장지만 바꿔치기해서 내놓는 불량 제조업체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를 가려낼 제도적 방안이 필요합니다.”

김대희(68) 대표의 설명이다. 방진복 차림이다. 그는 48년 동안 삼일야간학교를 이 끌어온 대구 야학의 산역사이자 증인. 그 공로로 지난 9월 ‘자랑스러운 달서구민상’을 받기도 했다. 야학은 돈이 되지도, 사회적 관심이나 조명을 받지도 못하는 ‘봉사의 영 역’. 그러던 그가 마스크 제조에 뛰어든 것은 지난 2월 말. 대구에서 2,000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을 때다.

아니나 다를까. 돌발상황에서 마스크 공급 물량은 부족했고 몇몇 대형마트에만 제 한 공급되면서 사재기까지 번졌다. ‘마스크 대란’이었다. 시민들은 감염 위험을 무릅 쓰고 길게 줄을 섰다. 그는 누구보다도 상황을 실감했다. 회사 부대표가 마스크 재료 인 부직포 원단 가공·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던 터라 마스크와 마스크 재료 수급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품의 재료 값은 급등했고 품귀에 불량품 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코 부분이 편한 마스크

“백신 개발은 기약할 수 없고 마스크 착용이 감염을 막는 최선인데 대란이라니…. 마스크 완제품을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급등한 부품 재료 값을 감당하기 위해서이 기도 하고요. 물론 이건 봉사가 아니라 사업이었어요.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 니다. 국내외 마스크 제조와 유통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몰랐고요.”

일을 시작했지만 진행은 녹록지 않았다. 마스크 관련 업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얻어야 했다. 제품 시험 성적서를 통과하는 일부터 벽에 부딪혔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일이라 이해는 했지만 애 많이 먹었습니다. 마스크 대란 이 전에 마스크는 황사 대비용으로만 썼잖아요. 관련 자료들도 황사 대비에 관한 것들뿐 이었습니다. 코로나19 관련 자료는 직접 부딪혀서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 인·허가 과정에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현재 크리진블루는 마스크를 한 달에 약 300만 장 생산하고 있다. 원자재는 모두 국내산이다. 누리집의 제품 사용 후기에는 코와 닿는 부분에 알맞게 여유가 있어서 착용도 쉽고 숨쉬기도 편하다는 의견이 올라와 있다. 디자인이 세련돼 패션감을 살린다는 의견도 있다.

 “원재료 자재비가 3배 가까이 오른 데다 자재 확보 자체가 어려워 처음부터 어려웠 습니다. 중국산 재료의 경우 품질 속임수를 가려내기 어려웠고요. 초반의 어려움을 이 겨내고 이제는 온라인 쇼핑몰, 조달 입찰 시스템 등 한 단계 앞선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마스크 착용이 생활화하지 않은 유럽 시장 공략 등 수출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디즈니랜드 캐릭터 로고 사용은 성사 단계고 자체 판로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대구마스크협동조합에도 참여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는 포화상태. 고만고만한 업체끼리 제살깎기 경쟁을 멈추지 않으면 그 결과는 품질 하락이다. 그는 제살깎기, 품질 하락 경쟁을 멈추고 상생(winwin)과 발전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다 대구마스크산업협동조합에 참여하기로 했다. 

“마스크 산업은 지역 방역 안전망 확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마스크 대란 사 태에서 절감했듯이 생산 차질이나 물량 부족, 수급 불균형 등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협동조합 형태의 컨트롤 타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달 초 저희 회사를 포함한 40 여 개 마스크 제조업체가 참여하는 ‘대구마스크산업협동조합’ 창립총회를 마치고 대 구시의 설립 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안동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이사온 대구에서 줄곧 살았다. 대학도 대구에서 마 쳤다. 자긍심 높은 대구 토박이가 됐다. 1972년 큰 꿈을 그리던 대학 시절, 봉사활동 으로 서남시장 삼일야간학교에 첫발을 들인 게 인연이었다. 이 야학을 그가 맡아 평 생 일터이자 삶터로 삼게 될 줄은 당시 그도 몰랐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보 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나누려는 큰 생각만이 꽃피울 수 있는 아름 다운 인연이다.

“당시에 야학은 가정 환경이 어려운 청소년들이 주경야독으로 배움을 이어가는 곳 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야간학교 선생님은 변함없이 대학생 봉사자이지만, 지 금은 수강생 연령대가 평균 67세로 높아져 문해 수업이나 검정고시 대비를 목표로 공 부하고 있습니다. ‘글을 몰라 답답하게 살다가 새 삶을 사는 것 같다’, ‘글을 알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 새삼 보람을 느낍니다.”

 

 

■ 마스크 제작 과정

마스크는 크게 겉지(원단)와 속지, 귀끈의 세 부분이다. 속지는 부직포 2장에 그 사이 필터 1장이 들어가 3겹이다.

⓵ 240mm 원단을 걸이에 걸어서 1차 성형한다. ⓶ 초음파와 칼날로 코 모 양 등을 찍어 2차 성형한다. ⓷ 귀끈(이어 밴드)을 붙이고 검사한다. ⓸ 제품 별로 밀폐 포장(파우치 실링)한다. 이때 제품마다 일련변호(로트번호)가 부여 돼 사후 관리가 가능하다. ⓹ 50개 단위로 박스 포장해서 20개 박스 단위로 출 고한다.

■ 불량 마스크 구별법

다음과 같은 경우 불량 마스크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⓵ 포장지를 뜯 었을 때 마스크에서 거북한 냄새가 난다. (재료나 제품의 보관 상태가 청결하지 않거나 항온·항습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쁜 냄새가 밴다.) ⓶ 귀끈이 쉽게 떨어진다. ⓷ 코 부분을 밀착하는 철심이 구부리기도 전에 튀어나와 있다. ⓸ 원자재인 원단이 지나치게 가볍다.

야학생 평균 67세…졸업생 3,500명

야간학교 교장 선생님인 그는 마스크 공장에 출근한 뒤 야간학교로도 출근한다. 현 재 재학생 31명, 졸업생은 3,500명이다. 대학생이 졸업생도 수백 명이다. 구청이나 교 육청에서 받는 지원금은 교재비와 냉·난방비에도 빠듯하다.

그는 평생 ‘세상의 숨통을 틔어주는 사람’이다. 야학이 글을 몰라 답답한 사람들 의 숨통을 틔어주는 일이라면, 그의 ‘인생 3막’ 마스크회사는 팬데믹 상황에서 답답 한 사람들의 숨통을 틔어주는 일이다. 오늘 따라 회사를 나서는 그의 발걸음이 더욱 가볍다.

“오늘은 야학 학생 어르신들과 경주로 가을 소풍 가는 날이에요. 오래 함께하다 보 니 가족 소풍 같습니다. 마스크도 몇 개 챙겨 갑니다. 잘 다녀올게요.”

김선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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