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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가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고 부른 이유

발행인 칼럼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 입력 2020.11.27 00:00
  • 수정 2020.12.02 14:02
  • 기자명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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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테스형’.

나훈아의 신곡입니다. 처음 곡을 발표했을 때 대중예술가가 철학의 대가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낯설고 어색하게 하기가 예술의 핵심이라지만, 그래도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사뭇 데면스럽던 조합은 ‘대한민국 어게인’ 콘서트를 계기로 ‘찰떡궁합’이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아 있다면 나훈아의 ‘테스형’에 호응해 ‘그래, 동생아!’하는 연설문을 내놓았을 듯합니다. 가요와 철학은 너무도 다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참 많습니다.

“너무 말을 잘해서 싫어!”

우선 말을 잘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말의 달인이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하나로 많은 이들의 복장을 뒤집어놓았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있었겠지만, 소크라테스의 반박 불가능한 지적이 권력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가 배심원들 앞에 섰을 때 처음에는 유죄와 무죄의 비율이 280대 220이었습니다. 70 넘은 나이에 재판정에 선 노인을 보고 측은하게 여겼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자신의 말로 무지한 군중을 비판하자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그의 변론 이후 360명이 유죄를 선언했습니다.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따박 따박 대답을 너무 잘해서 측은한 마음이 싹 사라진 때문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말의 힘을 신앙처럼 믿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글과 말을 비교하면서 말이 훨씬 훌륭한 소통의 수단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글이 말보다 무책임하고, ‘살아 있는 정신의 직접적인 교류’를 하는 데는 말이 더 훌륭하며, 말은 위조의 가능성도 없다고 봤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가장 요긴한 무기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언어를 연마한 철학자였습니다.

조금 넓게 보면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이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누구 할 것 없이 말에 매달렸습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또렷한 흔적을 남긴 사람은 키케로(BC106~BC43)입니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계승자로 알려져 있는데, 말 실력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합니다. 키케로의 수사법은 2,000년 동안 서양에서 ‘말하기’의 표본으로 제시되었습니다.

키케로의 말 잘하는 비법을 보면 ‘교과서’로 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어조의 변화, 말의 리듬, 적절한 손동작, 눈썹의 움직임 하나까지 염두에 둔 표정변화 등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주변을 살살 거닐다가 갑자기 한두 발짝 앞으로 나가기도 하고 때로 인상을 찡그리는 악센트를 줘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더불어 적절한 비유를 활용하면서 간간이 웃길 줄도 알아야 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법에도 서툴지 않아야 대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키케로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현대의 ‘웅변’이 있습니다. 바로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입니다. 키케로가 설명한 웅변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스티브 잡스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또한 키케로가 소크라테스 철학의 계승자였다면 스티브잡스는 소크라테스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기술을 모두 주겠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표정이나 말의 강약 같은 걸 보면 나훈아도 키케로 못지않은 느낌이 듭니다. 물론태생은 다릅니다.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고 부를 만큼 좋아하지만, 철학적 유산을 이어받았다기보다는 무대에서 경험을 통해서 끊임없이 갈고닦은 실력입니다. 각각 다른 분야에서 출발해 말의 정점에 올랐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대들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

자기 주장이 강한 것도 공통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도망갈 수 있었는데도 자기 철학과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일방적인 성격과 태도로 유명했고, 암에 걸렸을 때도 가족들의 끈질긴 요청을 뿌리치고 자연요법에 매달렸습니다.

나훈아도 자기 주장이 강한 건 대한민국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다면 하는 분이어서 예전에 기자회견장에서 “딱 5분 동안!”이라고 외쳤을 때 전 국민이 긴장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그가 죽음 앞에서 느낀 감정은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대중에 대한 깊은 실망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민주주의는 인류가 구현한 가장 이상적인 체제’라는 명제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다수의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것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의 제자인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 공감해 다수의 무지한 결정에 국운을 맡기는 것보다 ‘소수의 철인이 지배하는 철인정치’가 옳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절망에서 출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치의 역사는 소크라테스를 덮친 절망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의 흔적이며, 그가 던진 질문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민주정을 표방한 권력자들이 저지른 실수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민주주의 전제정입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은 이를 두고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권자’가 전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짓뭉개는 정치가 된다는 뜻입니다.

토크빌은 이런 상황을 막는 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 그리고 공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ㆍ정치적 공간을 메마르게 않게 만드는 시민정신과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토크빌의 논리를 나훈아의 말로 바꾸자면 이렇게 됩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의 어려움을 죽음으로 보여주었다면, 그만큼이나 말 잘하는 나훈아는 민주주의에 활기를 불어 넣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나훈아가 유일한 경우는 아닙니다. 예인들은 전통적으로 특권층이나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전문가들이었으나 때때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악성 김성기가 대표적이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내놓고 간신 목호령의 연주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의 단호한 태도와 언행은 선비들 사이에 두고두고 칭송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나훈아의 말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나훈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을 울리고 웃기는 예인으로 시작해 아테네를 말로 굴복시킨 소크라테스처럼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큰 ‘어른’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섰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대중예술인을 배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를 보는 행복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데, 나훈아를 통해 얻는 행복도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는 짧을 것입니다. 그의 건강과 끊임없는 열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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