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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롯 열풍과 나훈아 신드롬

무명 가수의 대중가요론

  • 입력 2020.11.04 00:00
  • 수정 2020.12.02 11:58
  • 기자명 김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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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한 귀퉁이에 발을 들여놓은 지 35년이다. 나름의 꿈을 품고 가수 활동을 시작했던 그 시절, 무명 신인 가수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었다. 방송에 나가 자신의 노래를 홍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니 방송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쏟아 부어도 ‘될 동 말 동’한 일이었다. 돈과 시간의 낭비가 엄청나서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많은 가수 지망생들이 전재산을 처넣고도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쓸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중에는 그러고도 꿈을 접지 못해 평생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돈 없고 백 없고’로 시작하는 상투적인 자기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다 제 실력 탓이겠지만 나는 조금 일찍 마이너 가요계나 연예계의 실상을 간파한 셈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13년 전 은퇴 아닌 은퇴를 했다. 대가수가 되는 것은 포기했지만 노래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지금까지 ‘나의 의지와 성향대로 일할 수 있는’ 이벤트업과 가요 개인·단체 지도, 출강을 해왔다. 노래는 물론 기타, 드럼, 색소폰, 장구, 꽹과리, 북, 징, 사물놀이 등 종목도 다양하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지만 한 번도 노래를 떠나본 적은 없다.

35년 연예계 생활 ‘담담하게 행복하게’

요즘은 나이가 들만큼 들었는지 주변에서 행복하고 기쁘고 힘들고 아픈 얘기를 들으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한다. 오히려 감성이 충만해서 젊은 시절보다 노래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면 어이가 없어 혼자 웃고 만다. 어쨌든 건강만 잘 지킨다면 85세까지 음악과 함께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고서 준비하고 실천하고 있다. 비록 성공하진 못해 변방을 지키며 활동하고 있지만 음악에는 정년이 없다.

“세상은 그리 빨리 바뀌지도 않지만, 그리 빨리 망하지도 않는다. 표면만 보면 놀랍게 빨리 바뀌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면에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고, 꽤 긴 시간이 지난 후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면에 올라온다. 또 어떤 사건으로 한 흐름이 완전히 궤멸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영향은 세상 구석구석에서 오랫동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죽하면 ‘나비효과’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가 1970년대 가요를 정리하면서 서두로 꺼낸 말이다. 미스트롯과 미스터 트롯이 가요계를 휩쓸고 있는 요즘 이 말을 실감한다. 송가인, 임영웅, 다인이 등 보석 같은 후배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너무도 고맙다. 혜성 같이 등장했지만 이들은 결코 어느 날 돌출한 요즘말로 ‘갑툭튀’가 아니다. 가요계의 오래고 깊은 흐름이 비로소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으로 평가하는 시스템 정착하기를

우리 가요계의 병폐가 깊었다. 호흡과 발성은 물론 무대 매너와 박자, 음정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수들이 히트가수나 대가수 행세를 해온 경우가 적지 않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깊은 곳에서 발성을 끌어낼 수 없다. 겨우 목에서 내는 소리를 쥐어짜면서 노래한다. 이런 노래에는 깊은 울림이 없다. 아무리 대중가요라고 하더라도 이런 노래들은 오래가지도 깊이 스며들지도 않는다. 그동안 호흡훈련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가수들이 방송사 로비나 기획사의 장난으로 인기를 누리며 방송을 좌지우지해 온 것은 아닌가 나는 오랫동안 의심해왔다.

송가인을 비롯한 무서운 신인들의 등장으로 우리 가요계에도 오직 노래 실력과 대중적 호소력, 음악의 내용으로 평가받는 청신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바란다. 그리고 이것이 시스템으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반짝하는 인기나 얄팍한 인기가 아니라 오랜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울림의 소리를 들을 권리가 대중에게는 있다.

가황 나훈아의 지난 추석 특집 TV 공연은 반향이 엄청나다 못해 나훈아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광대뼈와 치아, 구강구조 등 그의 ‘큰’ 얼굴은 두꺼운 그의 가슴과 함께 매우 훌륭한 발성기관이다. 가창력의 바탕은 발성이라는 점에서 그는 타고난 가수다. 여기에 뛰어난 작사 작곡 실력까지 더했다. 묵직하고도 부드럽고, 깊숙하면서도 기가 막히게 꺾어드는 그의 노래를 오래도록 듣고 싶다.

풀 수 없는 의문 하나

나훈아의 노래와 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의미를 붙이고 해석한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부분만 보고 듣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수는 노래를 했을 뿐이다. 특히 나훈아의 노랫말은 섣불리 결론을 내거나 강요하기보다 곱씹어 생각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가수들이 대중에게 인기를 ‘구애’했다. 나의 노래를 들어 달라고, 나의 팬이 돼 달라고 간청했다. 지금은 그 반대로 대중이 가수에게 나의 편이 돼 달라고, 나의 뜻과 마음을 알아서 널리 전파해 달라고 매달리는 형국이다. 유튜브와 SNS가 주도하는 천변만화 변화무쌍한 대중가요의 흐름에서 대중은 강해진 것인가, 약해진 것인가. 나훈아 신드롬이 내게 안겨준 풀 수 없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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