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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숭열 사진이야기

  • 입력 2020.12.07 00: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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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숭열(대구사진영상연구원/대구사진놀이치료연구소 대표)

애매하게 시간이 뜰 때 평소에도 자주 스마트폰 갤러리 를 열어 본다. 별 생각 없이 ‘맞아. 이땐 이랬었지.’하며 추억에 잠기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곤 한다. 사진들은 나의 시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순간 무엇 때문에 카메라를 켰는지, 나의 선택이 떠오르면서 당시의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 하게 재생된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일 년의 끝이 그려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문득 올해엔 어떤 일 들이 있었나 궁금해졌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심 정으로 차근차근 나만의 갤러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해의 앨범은 조금은 쓸쓸하다. 작년 앨범을 가득 메웠던 취미활동 사진들도, 설렘이 듬뿍 담긴 여행지 사진도 없다. 그 대신, 익숙한 모습의 집안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러고 보면 크고 작은 변화가 무수히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당연한 듯 현관 앞에 자리한 마스크도 그렇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물 건들이 새로 들어왔다.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공간이 꼬박꼬박 집을 찾는 가족을 위 해 색다르게 재탄생하기도 했다. 길가에선 모두들 숨죽이고 걸었지만 집안은 조금 더 풍요로워졌다. 지난 시간을 비춰 주는 사진들을 보며 내가 겪어 온 변화를 떠올리니 아, 어느덧 달라짐에 익숙해져 있었구나 싶다.

찬찬히 사진들을 훑다 보니 새삼스레 달리 보이는 것들도 많다. 몰랐던 천장의 구조 가 보이고, 벽지의 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정성껏 차린 밥상 뒤의 화분도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다. 일 년 365일을 머무르면서도 구석구석 낯선 곳이 이렇게나 많다. 렌즈가 좀 더 안쪽으로 향한 만큼, 못 보고 지나치던 것들을 보다 자세히 살필 수 있게 되었다. 행동반경이 줄어들면서 동시에 인간관계도 축소되었다. 정말로 보고 싶었던 사람들만이 앨범 속에 남아 있고 함께 나온 얼굴에는 진심에서 우러난 반가움이 가득하다.

▲ 사진_박인호, 금호강 일몰, 2020.

 

 

보통날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앞을 향하고 주로 먼 곳을 향해 있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생각,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늘 기저에 깔려있다. 그런데 공동의 위기를 맞이하며 다함께 달려 나가는 속도가 늦춰졌다. 사람 사이의 거리 는 멀어졌지만 관계의 밀도는 높아졌다. 철저하 게 안전을 확보하고 불안한 경기를 극복하는 것이 모두가 몰두해야 할 최우선 과제임은 분명하 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내가 어떤 것을 선택했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돌아본다면, 모르고 지나쳤던 소 중한 것들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현재를 이해함으로써 보 다 정확한 미래를 그릴 힘을 얻는다. 다가올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익숙한 스마트 폰을 꺼내 지난날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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