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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잘 써 준다는 선진 스님 佛그림 책장과 타공판 사이 맞춘 듯 딱 맞아

선진 스님의 불(佛) 그림

  • 입력 2020.12.03 00:00
  • 기자명 심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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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얄궂은 두 명의 중 이야기를 다룬 ‘얄궂은 중둘’을 전하고 바로 대구로 내려 가 스님 한 분을 만난 야릇한 날이었다. 또 어제는 그림 한 점, 사진 액자 한 점, 책 7 권, 굵은 염주 1개가 그저 내 손에 들어온 재미있는 날이기도 했다.

내가 어제 얼치기 중 둘을 거칠게 그러나 단호하게 깐 이유는 대중의 사랑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것을 혜민, 현각은 물론 우리들도 깊이 잘 알아야 하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 드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대중들 사랑의 무게와 채찍의 무게는 비례해야 옳 고 그것이 공정하다.

헌데 이러고 나니 몇 가지가 밟혔다. 당장 만날 ‘불복장(佛腹藏) 전문가’ ‘설치미술 가’ ‘대구 야당’으로 불리는 선진 스님이 무슨 죄인가 싶어 조금 밟혔다. 또 엊그제 “재 미있는 글 보내줘서 고맙다”며 카카오톡으로 스타벅스 커피와 케이크 선물을 보내온 불교방송 이현구 선배(전 편집국장)가 눈에 밟혔다.

(*불복장= 법당에 모시는 불상의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례행위와 불상 속에 넣는 물건 모두를 가리킨다.)

마침 어제 내 손에 들어온 책 7권 중 한 권이 『종범 스님 설법집-오직 한 생각』이었 다. 대전으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서문을 훑어봤다.

어제 내가 말한 “남한테 피해 안주고 범사(凡事)에 감사해하며 매일 매일을 근면성 실하게 살아가는 범인(凡人) 모두가 실은 도인이다. 우리들 중도인 아닌 이가 없는 것이다”는 대목을 종범 스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경전에서는 본원자성(=깨달음)을 ‘옷 속의 보배구슬(衣內明珠)’에 비유했습니다. 자기 옷 속에 귀한 보배구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여기저기 떠돌며 문전걸식을 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늘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던 사람이 자기 옷 안에 있는 보배구슬을 탁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던 버릇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담 마기금(擔麻棄金)’이라고 합니다.

 담마기금은 눈앞에 황금이 있는데도 자기 등에 짊어진 삼 덩어리가 아까워서 황 금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보이고 들리는 티끌세계에 마음이 팔려서 자 기 본원자성을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까지 짊어지고 왔던 삼 덩어리가 아까 워서 눈앞에 있는 황금을 보고도 그냥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오로지 한 생 각』, p18)

이 책은 며칠 전 선진 스님이 이학무 대구한국일보 지사장께 선물한 것이다. 이 지 사장께서 자랑삼아 내놓은 것을 내가 “읽고 다시 드리겠다”고 가져온 것이다. 나는 종 범 스님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문장을 훑어보고 가져가 읽겠다고 했을 뿐이었다. 기차 안에서 저자 얼굴을 살펴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8년간 중앙승가대학 총장을 지내며 불교방송 등 매스컴을 통해 열심히 불법을 전한 분이다.

머리말 ‘청정도량 겁외춘추’ 편을 스님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량(道場)은 부처님을 모시는 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곳을 도량이라고 합니다. 또 수행(修行)하는 곳도 도량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인 불설(佛說)은 각설(覺說)이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설법하시는 분이 부처님입니다.

수행(修行)은 각행(覺行)이라, 깨닫는 행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계신 곳, 불설이 항상 이루어지는 곳, 또 깨달음으로 가는 각행 수행이 이루어지는 곳이 도량인 것입니다.(위 책, p16)”

나는 어제 세 번째 만난 선진 스님에게서 그림 한 점을 선물 받았다.

스님 도량에는 처음 간 날이었다. 예술가인 스님 절엔 온통 예술품이었다. 선진 스 님은 최근 노스님인 청도 운문사 회주 석란(石蘭) 전명성(全明星) 스님 초기 작품을 한 점 구해 애지중지 중이었다.

나는 곳곳에 걸린 작품을 감상하다 쪽방에 놓인 20호짜리(70×60) 화선지에 부러 격자형 무늬를 새기고 그 위에 약사여래불을 연상케하는 앙증맞은 불(佛) 자만 놓은 선진 스님 작품에 눈길이 갔다.

“스님, 이 작품은 저 주세요.”

“그래요. 우리 심지훈 기자님은 마음을 예쁘게 쓰니까 내 드리지.”

스님은 법명 선진(善眞)과 지곡(芝谷) 그리고 옴(唵) 자 낙관을 3개 찍고, 작품 뒤 편엔 ‘2020.11.18 한국일보 심지훈 기자님께 드립니다. 선진 합장’이라고 서명을 하고 선 액운 타지 말라고 복장까지 해주셨다.

그 그림을 들고 기차에 올라 『오직 한 생각』의 문구들을 보노라니 짐칸 위에 놓은 불(佛) 자 작품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종교의 본질은 인간답게 서서 사는데 있다. 그것은 종법 스님의 불교식으로는 ‘깨 달음’을 통해 가능하다.

“깨달음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이 발심이다. 그래서 발심이 중요하다. 그 다음 수행이 중요하다. 수행은 어떤 기술 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행위가 수행이다. 발심은 선후가 있지만, 자기 본래 마 음을 깨닫는 오심(悟心)은 선후가 없다. 깨달음은 찰나에도 얻을 수 있다.(『오직 한 마음』, p19)”

선진 스님 주신 20호짜리 너른 운동장 같은 화선지 위에 홀로선 불(佛) 자는 내가 작업하며 늘 바라볼 수 있게 컴퓨터 앞쪽 책장 오른쪽 벽면에 모셔뒀다. 신기하게도 책장 턱과 타공판 사이에 꽉 끼어 따로 맞춘 것만 같다.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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