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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숭열 사진이야기

  • 입력 2020.10.24 00: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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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숭열(대구사진영상연구원/대구사진치료연구소 대표)

요즘 전국 각지에서 근대(近代)역사박물관을 흔하게 찾 아볼 수 있다. 근대는 1876년부터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 지의 시기를 말하는데, 우리나라가 자주권을 잃었던 시기인 만큼 당시의 유산에 대해 보존가치의 유무를 따지는 일도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경제를 책임지던 제조시설 중 지역에서 빼놓 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양조장이다. 양조장사업을 활성화하면서 개인의 술 제조 행위는 불법이 되었고, 양조장은 지역의 유지들을 부 자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제일 오래된 양조장 은 영양읍에 소재한 영양양조장이다. 1915년 설립되어 2018년 12 월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할 때까지 영양군민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던 중요한 시설이었다.

영양군에서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영양양조장의 복원 에 나섰다. 막걸리 양조장으로서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해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면서도, 막걸리 제조·체험·전시를 비롯해 청춘주막·청년창업공간 등 복합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막걸리의 재해석을 통한 전통문화의 보존까지 꾀하고 있다. 나는 이번 영양양조장 근대역사 만들기 작업에 사진 파트의 일원으로서 함께하게 되었다.

7년간의 휴업으로 방치되었던 양조장 내부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역사학자이신 송호상(동양대 교수)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물품 하나하나에 의미를 찾아가며 역사의 한 조각을 사진으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양조장의 필수품이었을 각방의 온도계, 그리고 세월과 더불어 천장과 벽면에 독특한 패턴을 그려낸 곰팡이들은, 자신들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었노라 외치고 있었다. 막걸리의 특성상 발효 과정을 거쳐 야 하기 때문에 곰팡이균과의 동거는 오히려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천장에 일률적으로 나 있는 환기창은 들어오는 빛을 최소화하면서도 외부 공기와의 유기적 연결을 형 성하여 막걸리의 완성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파이프의 역할은 양조장이 가장 번성했던 때 막걸 리의 이동 흔적을 보여주어 우리에게 활발하게 운영되던 당시의 모 습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창문틀에 묻어 있는 적산가옥(敵産家屋)의 특징에서 시작해 새 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의 슬레이트 지붕, 스테인리스 보관통, 플 라스틱 바구니 등에서 영양양조장의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스토리텔링이 자연스럽게 완성되고 있었다. 설립초기의 서류철과 일본산 대형 금고는 근대에서 분리할 수 없는 분명한 일본의 잔재 이지만, 이 또한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역사일 것이다.

사진을 하는 나로서는 이런 작업에 함께하는 것이 남다른 의미 를 가진 시간으로 다가온다. 스쳐지나갈 역사의 한 조각에 덧붙여 나의 주관적 시각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 느껴져 더욱 신이 나 열중하게 된다. 사진의 기본인 현실재현에 충실하면서도 역사 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이번 작업은, 단순히 사물을 재해석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 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 역시 먼 훗날에는 역사의 단편으로 거듭날 수 있 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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