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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은 마음에 난 길 오늘조차 추억할 굳센 날을 기약하며

고향 이야기 고향길과 추억길

  • 입력 2020.10.28 00:00
  • 수정 2020.11.24 11:19
  • 기자명 이철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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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암 문익공 13대 종손인 이필주(78, 가운데,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씨가 17일 귀암고택에서 종친인 이수중(82, 오른쪽) 광주이씨 석전종회장, 이기진(76) 칠곡종회장과 함께 추석 귀향·귀성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사진=칠곡군

고향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그리움, 안타까움과 같은 정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나에게도 고향은 그립고 안타까운 기억이 강하다.

“잃어버린 고향을 찿기 위해서 인간은 타향으로 가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 럼 어릴 적 이삿짐 트럭을 타고 저녁 어스름 덜컹 내린 낯선 대구란 곳. 낯선 타향 대 구 살이는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 시절 큰 힘과 위안이 됐던 것은 바로 이맘때 쯤 고향으로 갈 수 있다는 설렘이었다. 추석에 어서 고향으로 달려가기를 기다리며 잠 을 설친 날이 기억난다.

“고향을 찾기 위해 타향으로 간다”

그 시절엔 누구나 그랬지만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다. 도시는 언제나 타향 같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 새 이곳에 삶의 터전을 이뤘고 도시는 제2의 고향이 됐다. 그렇다고 언제나 고향의 빛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옅어진 것은 아니다.

이제는 작게만 보이는 마을이며 골목길과 폐교가 된 초등학교와 운동장은 유년시 절로 돌아가게 하고, 여름철 우물가에서 간장에 물 말아 먹었던 밥맛은 아직도 뇌리 에서 침샘을 자극한다. 김장철 리어카에 배추를 싣고 강가에서 얼어붙은 손을 모닥 불에 녹이며 맛본 김장김치의 맛은 돌이킬 수 없는 맛을 추억하게 한다. 작아 보이는 운동장 둘레의 나무들과 마을 입구의 소나무들만이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채 우두커니 지키고 있다.

그렇게 설레며 기다렸던 추석 귀향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로막혔다. 우리의 일 상을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던 거대한 대리석 바닥이 사실은 살얼음판처럼 얇고 허약한 것임을 깨닫는 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 격리’ 등으로 거리가 텅 빈 며칠로 충분했다. 3,000만 명이 귀성길에 나서는 민족대이동의 흐름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 19의 덫이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의 삶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카프카는 고향을 찾기 위해 타향으로 간다고 했 지만 팬데믹 시대의 도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타향이 되었다.

‘소중한 일상’ 숨은 보석 하나를 얻은

이번 추석은 어쩔 수 없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내년을 기약하고 그 다음을 또 기약한다. 귀향길을 가로막는 것은 코로나19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무서운 거짓말 과 이기심이라는 것도 지켜보았다. 많은 희생과 아픔과 우여곡절 끝에 되찾은 일상은 얼마나 소중하게 빛날는지…. 지구적 재난 덕분에 각자의 가장 소중한 일상이라는 보 석 하나를 되찾게 된 것은 아닐까.

팬데믹의 와중에 60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어린 시절 얼굴이 남아 있는 고향 친구 들을 만나면 반갑다. 만나면 아직도 초등생 시절 같은 고향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고 맙다. 지금 여기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고향길은 차 막히는 땅 위의 길이지만 추 억으로 이어져 마음속에 먼저 난 길이기도 하다. 재난조차 추억으로 돌이켜 볼 굳센 날을 기약하며 마음속 고속도로로 고향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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