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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추억의 동의어 고향·어머니·친구·천렵… 올해만 비대면 내년부턴 대면

고향 이야기 비대면 시대에 더 그리운 곳

  • 입력 2020.10.24 00:00
  • 기자명 이헌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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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천상 명절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불고 들판이며 과원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다. 일년 농사의 대부분을 수확하는 기쁨이 있어 뿌듯하고 여유롭다. 여유가 있어야 살필 수 있다. 추석에는 돌아가 살 핀다. 귀성이란 말은 추석에 더 잘 어울린다.

연례의 가을맞이 행사 

추석이란 말만 들어도 고향의 어머니와 친구들이 생각난다. 친구들과 설치며 놀던 동구 밖 시내와 뒷동산 도 눈에 선하다. 우당탕거리는 추억 많은 곳은 시내다. 도랑, 또랑, 봇도랑이라고 불렀다. 추석 무렵은 계절적 으로 시내에서 천렵하기 안성맞춤이다. 특히 미꾸라지가 재료인 추어탕은 ‘제철 음식’이라 할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8·9월이면 두어 차례 태풍이 올라왔다. 비바람 몰아치는 게 태풍이지만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어릴 적에는 있었다. 폭우 속 마당에 놀랍게도 미꾸라지들이 퍼덕거렸다. 어른들은 이놈들이 하늘 에서 떨어졌다고 했지만 그건 아니란 걸 아이들도 알았다. 이놈들은 동네 앞을 흐르는 개울에서 튀어 올라 온 ‘힘꾼’들이었다.

어른들이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놈들이 낮지 않은 개울둑 을 어떻게 튀어 올라왔는지, 사람이 걸어와도 제법 먼 고샅길을 어떻게 거슬러 마당에까지 와서 퍼덕거렸는지 설명하기가 구구했다. 이런저런 설명 대신 어른들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둘 러댄(?)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 이게 더 중요했다. 이놈들이 개울에서 튀어 올라왔다 고 하면 하나같이 힘 좋고 싱싱한 미꾸라지에 눈독을 들일 테니까 미꾸라지에 대한 ‘ 꿍심’을 감추고 엉뚱한 하늘 타령을 했던 것이다.

폭우 때 미꾸라지가 마당에 퍼덕

어쨌든 뜻밖에 폭풍우 때부터 미꾸라지에 눈독을 들인 사람들은 때를 노렸다. 추석 무렵 한가한 틈을 타 개울가로 나왔다. 너덧이 될 때는 두 팀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미꾸라지 천렵은 연례행사가 됐다. 우리 팀은 개울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췄다. ‘췄다’는 말은 추렸다는 뜻이다. 개울을 샅샅이 뒤진다는 뜻이다. 개울을 얼마쯤 올라가면 논으로 들어가는 봇도랑과 만난다. 한 팀은 그리 빠져서 ‘논고둥’, ‘논고디’라 불리는 우렁이도 같이 잡는다. 우리는 개울 따라 계속 간다. 우당탕거리면서 미꾸라지를 잡지만 선수는 눈과 손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서 능숙한 사람은 미꾸라지를 한 광주리 잡아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빈 광주리를 가져간다. 그렇게 흔했던 미꾸라지들이 급격히 줄었다. 폭우 때 마당에서 퍼덕거리는 미꾸라지를 보는 일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농촌 인구도 급감하면서 잡는 사람이 적 어서 아마도 미꾸라지 개체수는 많아졌을 것이다.

레시피는 지역마다 달라도 맛은 불변

추어탕을 끓이는 레시피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같은 지역에서도 강 따라 개울 따라 다른 경우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배추를 넣어 끓이고 어떤 곳에서는 파를 넣고 끓인다. 배추를 넣느냐 파를 넣느냐의 차이는 그 지역 사람들의 기호에 따른 것이기 도 하지만 물맛에 따라 달라지는 미꾸라지 맛의 미묘한 차이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강이나 개울의 발원지인 산과 계곡이 다르면 토양의 성분에 따라 물맛이 달라지고 물맛에 따라 미꾸라지의 맛도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어릴 적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차이를 안다. 이제는 맛볼 수 없는 추어탕의 맛은 추억의 맛이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맛이 추억이다. 거기에 곁들인 소주나 막걸리 맛이 그립다.

얼마 전 지인과 우연히 들렀던 식당에서 어릴 적 먹었던 추어탕 맛이 살아있어 무척 반가웠다. 솎음 배추보다 조금 더 자란 어린 배추를 센 불에 살짝 데친 다음 넣고 끓인 추어탕이었다. 배추가 물컹한 대부분의 추어탕과 달리 씹을 때마다 배추가 사각거렸 다. 추어탕 맛이 살아 있었다. 탕이 시원하게 느껴진 것도 미리 한번 데친 배추 덕분이 었다. 어쩌면 일일이 미리 데치는 수고로움 덕분인지도 몰랐다.

고향이 그리울수록 향수는 달콤

아련한 추억 어린 고향에조차 갈 수 없는 팬데믹 세상이다. 추석 전에 날 잡아서 동 생들과 산소 벌초를 하고 성묘도 같이 하자고 정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아리다.

고향이 그리운 건 나이듦의 증표인지 50대에 느끼는 고향과 60대에 깨닫는 고향은 다르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나 역시 돌아갈 곳은 조부모님, 아버님 계시는 고향마을 선산이다. 고향이 그리울수록 향수는 달콤하다. 봄이면 앞산 진달래꽃 따서 먹고 여름 날엔 시내에서 물장구치고 가을엔 감서리·밀서리, 겨울엔 친구집 돌며 동치미서리하 던 인정 많고 속깊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내 고향 의령이 좋다. 광호, 성호, 종성, 명근 아. 코로나 걱정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 만들어서 명절에 시원하게 막걸리 한잔 하세. 올해만 비대면, 내년부턴 대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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