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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가 주목한 새로운 역사 연구법 고안했죠”

하버드 ‘마그나 쿰 라우데’ 졸업장 받은 손원익씨

  • 입력 2019.10.14 00:00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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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원익씨가 5월30일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졸업장 중앙에 우수 졸업생을 뜻하는(magna cum laude)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부에 재학 중이던 손원익(22) 학생에게 유럽의 한 대학교수가 항의 메일을 보냈다. 손씨의 논문에 자신의 연구와 겹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었다. 협박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손씨의 논문은 하버드의 철저한 검증절차를 거쳐 전공 학술학회(Weatherhead 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 WCFIA)에서 발표됐다. 하버드와 학계에서는 “하버드의 검증 시스템과 학술적 권위에 도전하는 것”라고 결론을 내리고 학교 차원에서 대응했다. 이메일을 보낸 교수는 결국 2주만에 자신의 과욕과 억측을 인정하는 사과편지를 보냈다.

손씨는 학교에서도 이미 유명인사였다. 그가 논문으로 발표한 연구 내용을 대학 교수 30여명 앞에서 발표한 일도 있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학부생의 발표를 들은 후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학부생으로서는 진땀 나는 경험이지만 더 없는 명예일 수밖에 없다. 손씨는 이 혹독한 검증을 통해 세계 최고의 학자들 앞에서 자신의 차별성을 인정받았다.

영국에서 노벨상 가장 많이 배출한 칼리지 진학

유럽 교수를 머쓱하게 한 논문의 주인공 손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하버드를 비롯해서 스텐포드(Stanford), 예일(Yale), 콜럼비아(Columbia), 유펜(UPenn), 브라운(Brown)대학에 동시 합격한 재원으로 고등학교 교지 편집장에 이어 하버드에서도 교지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 편집 간부위원(Editorial Board Executive)으로 활약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 재학 기간 중 크고 작은 상을 연이어 수상한 데 이어 역사 학부 졸업생 중 우수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마그나 쿰 라우데’상을 받았다. 동시에 아이비리그 졸업생 중에서도 최우수 인재들에게 주어지는 파이 베타 카파(PBK)상을 수상했다. 손씨는 앞으로 파이 베타 카파 수상자들의 모임에 평생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9월 중에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전면 장학금(Eben Fisk’s Scholar)을 받고 진학한다. 하버드에서 수행하던 연구에 박차를 가해 역사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옥스퍼드대 와 케임브리지대 소속 칼리지 중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칼리지로 유명하다. 

하버드 총장에게 전화로 항의한 사연

손씨의 성취는 어릴 적 장애를 극복한 것이어서 뜻 깊다. 대구 출신의 부친 손창호씨는 뉴욕대에서 사진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했으나 2살도 되지 않던 원익씨에게서 장애를 발견했다. 치료를 위해 다시 미국으로 간 손씨는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돌봤다. 어릴 때부터 휠체어에 의지한 원익씨는 건강 문제로 공부에 열중하기 힘들었지만 놀라운 독서량을 보였다. 속독과 다독을 통해 매달 수백 권의 책을 독파했다.

2011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인상 깊은 일화를 남겼다. 손씨가 졸업한 뉴욕 맨해튼의 트리니티(Trinity School)학교는 1709년에 개교했다. 대부분 오래된 건물이라 장애인 관련 시설이 없었다. 학교 측은 손씨를 위해 부랴부랴 이사회까지 열어 휠체어 이동 시설까지 만들었다. 손씨는 학교의 300년 역사에서 최초로 휠체어를 사용한 학생이었다.

하버드 재학시절에는 넓은 학교를 누비기 위해 휠체어에 전동기를 부착하고 다니다 경찰에 압수당하기도 했다. 교내 순찰을 돌던 경찰이 “폭발물일 가능성이 있다”며 강의실 바깥에 놔둔 전동기를 갖고 간 것이다. 그가 총장한테 “학습권 침해”라고 주장한 뒤에야 돌려받았다.

“약자들을 위한 역사 쓰고 싶어”

손씨는 협박성 이메일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부 시절 이미 학계가 주목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역사학자들이 텍스트를 해독해 역사를 기술하듯 사진 속 이미지를 분석해 그 안에서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찾는 역사 연구법을 고안했다. 특히, 2차대전 이후 UN이 보유한 수많은 사진 자료 속에 담긴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감정,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맥락을 객관적으로 계량화해 분석한 뒤 역사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이다. 최근 발전한 빅데이터도 기법도 연구에 적용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사진을 통해 평범한 개인들의 인생을 추적하는 식이다. 2년 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 산하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영국, 독일에서 공개되지 않은 방대한 자료를 열람해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하고 있다.

손씨가 이런 연구를 구상한 것은 역사 서술이 보편적으로 강자와 승자 편에서 진행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손씨는 “다양한 사진들이 머금고 있는 약자들의 삶을 역사화하는 작업으로 정확하게 진실된 역사를 형상화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고안한 독특한 역사 연구법은 하버드 졸업생 중 두각을 나타낸 학생을 선별해 심층 인터뷰를 거쳐 제작하는 교내잡지 가젯(Gazette)에 소개되기도 했다. 기사는 졸업을 일주일 앞둔 5월23일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지도교수인 엠마 로스차일드(Prof. Emma Rothschild)와 순일 엠리스(Prof. Sunil Amrith)및 하버드 교수들과 전공 분야의 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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