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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도 슬쩍 비껴간 세상 씻는 ‘힘찬 물줄기’

시민기자 재난기록 코로나19 ‘희망으로 한 걸음’ (3) - 청소용역전문업체

  • 입력 2020.05.23 00:00
  • 수정 2020.11.17 15:08
  • 기자명 이제훈 시민기자 (청소용역전문업체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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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가 물줄기를 뿜는다. 압력 150~200바(bar)의 고압세척기 안에서 압축된 물줄기는 3층 높이 건물을 단숨에 차고 오른다. 고압세척기는 스팀을 뿜어내기도 한다. 고압세척기가 등장하면 작업은 힘든 고비를 넘어선다. 앞서 먼저 바닥에 피막제거제와세제를 분무하고 밀칼, 솔, 철수세미, 마루광택기, 습식청소기 등으로 벗겨낸 때와 이물질을 고압세척기가 씻어내는 것이다. 이제 건조와 광택, 뒷마무리 작업이 남았다. 건물·시설에 대한 전문 청소 작업 과정의 설명이다.

스무 살 대학시절부터 맺은 인연

이렇게 때와 이물질을 벗겨내고 광택 작업까지 마치면 오래된 건물도 새집처럼 반짝였다. 일반적인 청소와 달리 건물 청소 용역은 건물을 새집처럼 만드는 수술이자마술 같았다. 작업의 끝은 늘 환하고 상쾌했다. 청소 일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스무 살 대학 시절. 웨딩 뷔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웨딩 직원의 소개로 청소 알바도 하게 됐다. 일은 힘들었지만 급여가 쏠쏠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나서게 된 일이었다. 군 제대 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했고 청소업체 사장님은 이전 알바생을 잘봤었는지 기꺼이 다시 불러줬다. 알바생은 정식 직원이 됐다.

5년 후인 2011년 지금의 관공서·기업체 청소종합관리 용역전문업체를 차려 독립했다. 흔히 3D업종이라 생각하기 쉬운 청소용역회사에서 일한 5년 동안 청소업의 가능성과 안정성을 확인했다. 청소업은 힘은 들지만 3D업종이 아니라 미래업종이다. 현재 정규직 5명, 비정규직 25명으로 연 매출은 5억에 좀 못 미친다. 어려운 형편에서 시작해 30대에 일군 결과라 부끄럽지는 않다. 지역 동종업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젊은 에너지를 사르고 있다.

 

 

물로 하는 작업이어서 겨울에는 더욱 힘든다. 강추위로 바닥에 뿌린 물이 금방 얼거나 수조의 물이 얼음으로 바뀔 때는 마음까지 얼어붙는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기회가 나에게까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얼어붙은 마음은 금방 녹는다.

미수금 급증…매출 급감과 같은 결과

청소업은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 많다. 앞에서 말했듯이 겨울철에는 더욱 힘들다. 이런 점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알아채고 고생하는 사정을 봐준 것일 리는 만무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사태로 청소업계의 일거리는 크게 줄지는 않았다. 선진국이 될수록 청결과 위생 문제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이 방역과 소독, 청소 문제는 생존 여부를 가를 만큼 중요한 공공 의료나 생명권의 영역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위생관념이 철저해지면서 앞으로도 관공서·기업체의 청소 일거리가 그리 줄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서도 일거리가 격감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막상 청소 작업을 마쳤지만 청소 대금 결제가 미뤄지거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기업 등 개별 주체의 경제 사정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현금 아닌 채권을 받아든 꼴이기는 하지만 최근 3개월 평균 월 매출의60% 이상이 미수금으로 잠기고 있다. 결국 매출이 격감한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청소업의 공사 규모는 크지 않다. 공사 금액이 소액이어서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이뤄진다. 이런 소액의 공사 대금조차 결제가 미뤄지거나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상비 등의 지출은 고정돼 있는데 미수금이 치솟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심각하다. 미수금 증가와 사업·운영자금 부족이 악순환에 빠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선제적 지원을 못할망정 사후 지원은 신속해야 한다. 소상공인대출을 신청하려 했더니 신청 대기자가 너무 많아 언제 신청하고 언제 심사통과할지 하세월이다. 지원은 한시가 급한데 실제 지급은 아직도 대기 중이라니 답답하다.

영남대학교 병원 청소 등 실적 ‘굵직’

그동안의 주요 공사 실적을 살펴보면, 대구대학교 외벽 청소, 로봇산업진흥원 왁스·청소, 영남대학교 기계관 청소, 대구지하철 교대역 청소(이상2017년), 교촌치킨 청소, BBQ 대구·경북지역 전체 청소, 영남대학교 병원청소 2차례, 대구미술관 청소(물탱크 포함)(이상 2018년) 등이다. 초·중·고·대학과 관공서, 프랜차이즈 업체, 아파트 등이 많다. 지난해는 좀더 바빴는데 실적은 여기에 반영하지 않았다. 올해는 보건소 관내 방역 건이 새로 늘었다. 매출 규모로만 보면 평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서 코로나19로 인한 직접적인 타격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보다 일은 더 많이 하느라 고생했는데 미수금이 늘어나 전체 매출은 작년 수준에 그쳤다. 힘이 빠지면 그보다 더 많은 힘을 내면 된다. 나 혼자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새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느낀다. 인건비는 오르고 인간관계는 더 힘들어진다. 일부의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계속해서 하자 보수를 요구하는 손님도 있다. 그런 것을 내세워 공사 금액을 깎으려 하는 손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요즘도 일 많이 하는지’, ‘회사는 잘 되는지’ 물으며 걱정해주신다. 좋은 기운 있을 때 만난 인연이 오래 간다는 말을 새긴다.

 

 

세상의 때와 이물질도 씻어내리기를

직원이 늘더라도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대표가 되고 싶다. 현장의 생생한 상황을 늘 파악하고 직원들과 구체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작업이 있을 때마다 직원과 같이 일했고, 작업이 없는 날은 영업을 뛰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나혼자 잘살고 싶지는 않다. 잘사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세상에 살고 싶다.

청소업은 보통 추운 겨울에 매출이 낮고 따뜻해지면 매출이 오른다. 대구와 우리나라가 어서 코로나19 사태를 물리치기 바란다. 여느 때처럼 올 여름 성수기도 잘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뿜어올린 세척기의 물줄기가 세상의 때와 이물질도 함께 씻어내리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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