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고 했다. 뛰어난 요리사는 훌륭한 의사 못잖다는 이야기도 있다. 누구에게나 좋은 식습관도 있지만 사람마다 필요한 음식이 따로 있기도 하다. 잘 먹어야 건강하고, 건강해야 잘 살 수 있다. 그 시작을 음식으로 본 것이다.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서도 음식을 먹는 일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폭식은 금물이듯이 독서 역시 많이 읽고 쌓기만 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음식을 잘 먹는 법이 있듯이 책을 잘 읽는 방법도 있다. 올바른 식사법에 비추어 명사들의 독서법을 살펴봤다. 헤
국회의사당 건축의 상징성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 정치와 선거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당 야당, 주류 비주류, 대립, 공천, 물갈이, 집회, 투쟁은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사당 안에서의 협의 소통 타협은 없고 밖에서 국가의 에너
지산동에 왕과 귀족들 무덤 수백개…한 무덤서 36명 순장자 발견되기도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도 추진, 박물관엔 묘 내부 원형 그대로 재현악기 제작과정 체험 프로그램 운영…伊 음악도시 크레모나와 교류 협력 딸기의 고장 경북 고령군은 고대국가 후기가야연맹체 대가야의 수도가 있던 곳이다. 우리나라 3대 악성(신라의 우륵, 고구려의 왕산악,
바이칼은 ‘샤먼의 호수’다. 시간의 흔적을 더듬을 수 없는 그 옛날부터 샤먼의 세계였다. 대한민국 3분의 1 크기의 이 호수는 지구촌 민물의 20%를 무기로 시베리아 고기압의 맹위를 떨쳐왔다. 그 무시무시한 맹추위 속에 샤먼의 전설이 잉태됐다.바이칼의 알혼섬 언저리에는 상인들의 제물이 된 처녀가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환생, 신들의세계에서 살게 됐다는
전세계 모든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공간, 게스트하우스. 그러나 여자 혼자, 여자끼리만 떠나 불안하다면 꼭 맞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바로, 여성전용게스트 하우스 ‘다님 하늘배’.매트리스 침대로 깔끔하게 정리된 2인실에는 다양한 소품으로 아기자기한 맛을 더했다. 창 밖 으로 보이는 한옥집도 여행의 맛을 더한다. 철제 2층 침대 2개로 이루어진 4인실은 테이블
잠깐 다녀가지만,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이 곳을 추천한다. 바로, 가정집에서 운영하는 ‘B&S 게스트하우스’. 봉산동 지킴이 주인장이 내 집처럼 편안하고 청결한 환경을 제공해 여행에 즐거움을 더한다.1인실, 2인실, 4인실, 8인실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 혼자서도, 친구·가족과의 여행도 가능하다. 객실은 방마다 화장실이 따로 있어 편안함
게스트하우스. 말 그대로 나그네들이 묵어가는 곳이다. 그 지역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때로 여행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 지역에서의 여행 스케줄을 짤 때 주인장과동료 나그네들의 의견을 참고하기 때문이다. 좋은 가이드를 만나면 지역을 가장 알차게 여행할 수 있다.대구의 대표 게스트하우스 피터팬, 더 스타일, 더 한옥&스파는 한집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대구에 잇따라 한옥 게스트하우스들이 문을 열었다. 2012년 7월에 문을 연 옛 구암서원 게스트하우스는 대구 한옥 게스트하우스의 초창기를 연 곳이다.옛 구암서원(龜巖書院)은 원래 달성 서씨 문중 서원이었다. 서원의 시초는 조선 현종6년(1665)의 숭현사. 지금의 대구초등학교의 서남쪽 언덕인 연구산에 이 사당(祠堂)을 세웠다.사당은 일반 민가에서 조상의 신
지역에서 북한 이탈 주민 지원활동을 펴왔던 (사)더나은세상을위한공감(대표 김병준)이 ‘공감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공정 여행이라는 큰 틀을 고민하다가 게스트하우스 운영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 예비 사회적기업을 목표로 (주)공감씨즈라는 별도 법인을 만들어 게스트하우스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단순히 북한 이탈 주민들에 대한 정착 지원의 차원
대구 도심의 한옥들이 빗장을 열고 대구의 속살을 보여주는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해 7월 24일 대구 중구 종로2가 ‘공감한옥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공감한옥 게스트하우스는 중구 근대문화골목 제2코스인 진골목에 있는 계명대학교 법인 소유로 코오롱 창업자인 이원만 회장의 생가 터 일부에 1950년대에 지은 한옥이다.이 한옥은 부지 208㎡(
대구 서문로. 중부경찰서·서문로119안전센터 왼쪽 골목 입구에 ‘판’이라고 적힌 붉은색 바탕 간판이 걸려있다. 조브장한 길목을 접어들면 대구종로초등학교 담장 길을 따라 ‘만만찮은 판’ 하나가 벌어지고 있다. 서문로1가 10번지 ‘게스트하우스 판’(대표 손미숙). 여기에 근대의 또 하나 표지인 적산가옥이 한옥과 짝을 이뤄 ‘고물상 창고였던 시간들’을 털어내고
1936년 주간 시사 화보 잡지로 탈바꿈한 이후 전성기에 500만 부, 한때는 1,350만 부의 기록적인 발행 부수를 자랑하던 「라이프」는 1949년 ‘미국 미술의 빛나는 새 현상’이라는 특집으로 추상표현주의를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당시 미국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확산되자 소련과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대구 중구 남산1동에 가면 유난히 오래된 건물이 많다. 재개발 열풍이 비껴간 골목에는 옛 정취가 가득하다. 남산1동 916-2번지. 유난히 긴 골목 끄트머리에는 언뜻 봐도 오래된 이발소가 있다. 51년째 같은 자리를 지켜온 ‘효성이용소’다.이용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10평 남짓 아담하고 포근한 가게 곳곳에 세월이 가득 묻어있다. 간판에 새긴 이발소 개업 연
“하이마트는 말뜻 그대로, 내 젊은 시절 마음의 고향이에요.”김현철 신장학 박사는 48년째 하이마트 단골이다. 하이마트가 1957년 문을 열어 58년째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니, 하이마트의 산 증인인 셈이다. 김 박사가 하이마트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7년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다. 3년 선배가 ‘유터피(Euterpe)’라는 음악 동아리를 소개해줬는데, 동아
옛 추억과 정취가 스며있는 동성로 진골목에 위치한 ‘미도다방’.실내에 들어서기 전, 입구서부터 미도다방의 풍경이 담긴 ‘美都茶香(미도다향)’이라는 시가 눈길을 끈다.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 잔 값의 추억을 판다’라는 구절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갖는 ‘미도다방’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20대 때부터 쌓아온
그녀의 일터 서덕순한복연구실 작업방 재봉틀 앞에는 59가지 색깔의 실패들이 옹기종기 꽂혀 있다. 실패 색깔마다 다 이름이 있다. ‘대추색’, ‘진한 살구색’, ‘연꽃색’, ‘백분홍’, ‘소털색’, ‘토끼눈색’, ‘회쪽색’, ‘노란수박색’… 숫자나 기호가 아니다. 듣는 순간 어렴풋 색감이 떠오르는 살가운 이름들이다. 불현 듯 그려지는 색깔도 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보일러회사 명퇴 직원’인 줄 알았다. ‘두 번 타는 보일러’, ‘세 번 타는 보일러’, ‘거꾸로 타는 보일러’…. 텔레비전 광고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보일러 얘기를 줄줄이 꿰었기 때문이다.보일러회사 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 분이었다. 그는 시골 마을 이장님이었다. 그것도 굽이굽이 산길을 차로 한참 올라가야 만나는
1960~70년대 급속한 경제개발 과정을 거친 우리 사회는 한때 ‘전통’을 곧 ‘후진성’이라는 개념으로 낮춰보는 자기 부정이 몸에 배었다. 그러한 자기 부정의 찌꺼기들은 아직도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얼룩처럼 오래 남아 있다. 1980~90년대 ‘우리 것’, ‘전통’에 대한 광범위한 자각이 일면서 ‘우리 것’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됐지만, 우리의 문화 수준과
매원마을을 오롯이 내려다볼 곳은 없다. ‘내려다보면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라고들 하지만, 내려다볼 산이 없다. 마을 앞 동정천(同廷川) 건너 나지막한 안산(案山) 위에서 아쉬운 대로 마을을 조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른 봄부터 매화와 매향으로 흐드러진 500년 유서 깊은 광주 이씨 집성 반촌 마을은 쉬이 제 깊이를 드러내지 않는다.1905년 무렵 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