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소녀가 보내준 꽃 한 송이가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어요.” 사공누리(38)씨는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다. 2014년 미술을 공부하려고 노르웨이에 왔다가 남편을 만나 정착했다. 지금은 ‘노르웨이의 사우디’로 통하는 스타 방에르에서 예술가이자 로갈란드(rogaland) 주립미술관의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노르웨이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예술을 펼치는 작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8월에 한국에서 연 개인전에서도 붓글씨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삼베천을 활용한 설치 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노르웨이는 연중
성주군 우체국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한주환(43)씨는 밤에는 소프트테니스(정구) 선수로 변신한다. 그는 선수인 동시에 지도자다. 성주 생활체육공원에서 진행하는 레슨 프로그램의 코치를 맡고 있다. 학생은 15명, 레슨코치는 한 씨를 포함해 3명이다. 문경이나 순천, 충북에도 소프트테니스 동호회가 있지만 선수 출신 코치가 이렇게 많은 지역은 성주뿐이다. 한 씨에 따르면 문경이 ‘정구의 도시’로 통하지만 성주도 그에 못잖다. 지난 7월에 열린 제60회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 성주 소프트테니스팀이 남자 청년부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너무 젊어. 일 제대로 하겠나?”1986년, 40대 초반에 면장(경북 의성군 금성면)이 된 후 여기저기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성군에서 최연소였고, 역사상으로 봐도 가장 어린 면장이었다. 주민들은 물론이고 면사무소 직원들도 회의적인 분위기였다.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청년 모임인 송림동우회였다. 이들은 기대와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금성면 지역의 청년들이 뭉쳐서 결성한 송림동우회는 JC(한국청년회의소)가 질투할 정도로 열심히 또 많은 활동을 했다. 이를테면, 병충해 방제 작업을 하면 송림동우회 회원
‘코로나 블루’를 한방에 날려버린 최고의 음악 축제였다. 7월 2일 오후 6시30분부터 4시간 동안 대구스타디움에서 대구한국일보 주최로 ‘코로나19 극복기원 K-트로트 페스티벌 대구 2022 Power of Daegu’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에는 3만여 명이 운집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신기록을 세웠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 공연에 37도가 육박하는 온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점심 즈음부터 대구스타디움에 몰려들었다. 팬클럽들은 커피차까지 동원해 아이스 커피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중학생 수준 정도 됩니다.”2017년 이만수 전 감독을 도와 라오스국가대표야구팀을 지도했던 권영진 감독의 말이었다. 당시 팀이 창단된 지 4년여가 흐른 즈음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는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이라고 평가를 듣는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라오스 야구팀에 서 들려오는 소식은 늘 희망적이다. 얼마 전 피칭머신을 도입한 것도 그렇다. 라오스 최초다. 라오스국가대표 남자팀과 여자팀을 각각 맡고 있는 민상기(51)감독과 조민규(34)감독이 하루 400~5
두나(29)씨는 2013년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으로 떠났던 언니에게서 급작스런 비보가 들려온 뒤였다. 어머니가 “네가 한국에 가서 언니를 도와야 해!”하고 말했고, 두나씨는 며칠 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갓 태어난 둘째 조카를 돌봤다. 언니는 동생 앞에서 한번도 울지 않았지만,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슬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형부는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4살난 아들과 갓 태어난 딸을 남겨둔 채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결혼식을 할 때 환하게 웃던 형부의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
제자들이 스승이 만든 곡을 반으로 줄였다. 스승은 분노했다. 그러나 막상 제자들 이 ‘칼질’한 음악을 들어보고선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제자들이 다듬은 곡을 이렇게 평가했다.“즐거우면서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가히 아정하다(아담하고 곧바르다) 하겠다.”진흥왕 12년(551)에 신라로 망명한 가야 출신 음악인 우륵의 이야기다. 우륵은 최근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열여덟 임윤찬 군의 인터뷰에 언급 됐다. 언론사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은’ 음악을 염두에 두었으
어머니의 공간“이젠 자랑할 데가 없어요.”오 년 전쯤이든가 머리가 허연 방송인 한 명이 방송에 나왔던 울먹이며 했던 말이다. 어머니는 질투하지 않는다. 자랑하면 자랑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기뻐하고, 아픈 마음을 내비치면 그 말을 한 사람보다 더 깊이 슬퍼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어머니라 부른다. 그 추억이 묻은 곳을 어머니의 땅이라고 한다. 고향이다.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그곳에 없지만, 어머니를 느끼는 공간이다. 그 곳에서 먹고 자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겨자씨 속엔 눈폭풍이 뻐꾹 소리 속엔 먼 산이’최정례(1955-2021) 시인이 쓴 시의 한 대목이다. 시인은 겨자씨를 보면 눈폭풍을 상상했지만 아둔한 보통 사람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지는 않는다. 오래된 사물과 풍경, 처음 보게 된 것이라 해도 애정이 듬뿍 담긴 것들과 무수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우리가 아직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언어를 통한 대화다. 말을 배우면서 이미 버렸다고 생각한 그 원시의 언어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어쩌면 계속 우리 속에 남아 생각과 정서를 향해 말보다 더 강력한 주파수
2007년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에 위치한 대통령궁에 한국 대통령 친인척 한 명이 도착했다. 두 인사가 방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양 측의 경호원들은 복도에서 대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측의 경호원은 건장한 남성 스무 명이었고, 한국 대통령 경호실에서는 여성 경호원 한 명을 파견했다. “꼬맹이네.” “얘가 왜 여기 있어?”키가 이 미터에 가까운 흑인들이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한국 측 경호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 프랑스어 알아들어. 너희들 말 다 들린다.”남자들이
“호중이 말이야, 사람이 변해도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가 있나!”김천예술고 명예교장인 이신화 박사가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건네는 말이다. 이 박사는 ‘트바로티’로 유명한 가수 김호중씨가 김천예술고에 편입할 당시 교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교사로 있던 서수용 김천예술고 교장과 함께 인생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결정적인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 이 박사는 “당시는 그저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는 학생에 불과했는데 지금의 김호중은 한 인간으로서도 너무도 훌륭하게 성장했다”면서 “앞날이 더 기대되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학교를 다닐 당시 김호중
“뉘집 아고(어느 집 자식이냐)?”1980년대 초반, 30반 중반의 청년들이 50~60대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청년이라는 말은 폐기된 용어나 다름없었다. 어른이 아니면 모두 애 취급이었다. “형님, 청년들도 대표 한 명 뽑읍시다. 형님이 나가보십시오.”1980년 말, ‘뉘집 아들(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위원 선거가 있었다. 이듬해 2월에 선거를 통해 1개 읍면에 2명씩 선거로 뽑는다는 공고가 떴다. 주변의 청년들이 나를 찾아와 도전해보라고 했다. 당시 도전장을 던진 사람은 나를
‘행동하는 동네 아줌마’대구 남구 나선거구에 출마에 구의원에 당선된 송민선(56) 의원이 선거 기간에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저 짧은 표현 속에 송 의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송 의원은 25년 동안 외식업에 종사했다. 남구뿐 아니라 대구에 사는 사람들도 식당 이름을 들으면 “아, 거기!”하는 말이 즉각적으로 쏟아질 만큼 인기 맛집이다. 식당에 방문하는 이들 모두 손님이자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소중한 정보원이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다보니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외식업중앙회 대구 남부지부장을 맡은 지
“당선되고 나니까 정치 선배들이 하나같이 ‘네가 될 줄은 몰랐다’고 그래요. 심지어 저를 군위의 후보로 추천한 분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하하!”6·1 지방선거에서 군위군 의원으로 당선된 서대식 의원(47)의 말이다. 상황을 보면 “당선된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정치 선배들의 말이 십분 납득이 된다. 선거운동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19년 동안 개인택시를 운영했다. 평소 정치를 하는 선배들과 교류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기는 했지만 큰 단체의 회장을 맡는 등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한 적도 없었다. 그저 개인택시로 열
“선한 영향력 끼치는 뉴스 앵커가 되고 싶어요”“중학교 때, 1년 반 만에 12센치가 컸어요.”2022 미스대구 진 박주은(22.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씨는 중학교 때 처음 “미스코리아에 나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갑자기 키가 큰 덕분이었다. 배드민턴을 시작한 뒤로 무릎에 성장통이 올 정도로 키가 쑥쑥 자라 현재 키까지 치고 올라왔다.미스코리아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몸’이었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이어서 너무 말라보일까봐 걱정됐다. 남들은 덜 먹으면서 준비했는데, 박씨는 먹는 데 더 집중했다. 더불어 탄탄한 하체를
미스대구가 돌아왔다. 코로나19로 한껏 움츠렸던 미스대구가 다시 시민들을 찾아왔다. 11일 아양아트센터에서 열린 2022 미스대구 선발대회에는 500 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코로나19 이전 평균 5,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운집한 야외 무대 행사에 비할 바는 못 됐지만, 객석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달라진 세상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전문 MC 이도현씨와 2020 미스대구 진 이연제씨가 진행을 맡은 가운데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명의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가 함께 꾸민 미스 대구 패션쇼와 장기 자랑에 이어 T
“적장의 마음까지 얻은 진정한 덕장(德將).”6·1 지방선거에서 경북 울릉군수에 당선된 남한권(62) 군수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다. 보수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득표율 69.71%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도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 준 그의 리더십과 정신력은 말 그대로 ‘장군’답기 그지없었다. 단기 필마로 난공불락의 성을 점령한 무용담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무소속 출마는 절대로 안 됩니다!”첫 번째 전략은 지피지기였다. 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승부를 예측한 후 나아갈 방향을 결정했다. 국민의 힘에서 현직 군수를 포함
“경북 군위는 전형적인 보수 지역인데다 투표율 전국 최고라서 보수당 공천받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 아닌가?”모르고 하는 소리다. 공천이 영향은 있겠지만 승리를 담보하는 절대적 요건은 아니다. 군의원 선거를 봐도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군위 ‘가’와 ‘나’ 선거구 중 ‘가’ 선거구 득표율 1위가 무소속이었다. 인구 2만 남짓한 지역의 특성상 보수 강세로 거론되는지 역임에도 ‘인지도’의 영향이 정당의 색깔까지 무색하게 만든다. 첫 도전보다는 재선이, 재선보다는 3선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김진열이 누구요?”이번 6.1 지방선거
1984년, 형님이 돌아왔다. 11년만의 귀향이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부 랴부랴 한국행 비행기를 탔지만 장례식 마지막 날에야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말이 서툰 어린 조 카를 데리고 온 형님은 아버지의 영전에 묵념한 뒤 그 자리에 선 채로 한참이나 영정사진을 물 끄러미 응시했다. “형님, 계속 미국에 계실 겁니까.”조문객들의 발길이 뜸해졌을 즈음 형님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버지가 유언을 남겼다면 바로 저 말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늘 형님이 한국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처자식 버릴까?”그렇게 툭, 던지고는 하소연하
“형님, 형사들이 검사도 조사할 수 있습니까?”2006년 1월, 성서에서 주물공장을 하고 있는 고향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의례적인 인사 끝에 “아주 이상한 놈이 있다”면서 저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검사도 나쁜 짓 하면 우리가 조사할 수 있지.” 그러자 반색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가짜 검사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놈이 아주 요상한 짓을 하고 다닙니다.” 그는 자기 공장에서 경리로 일하는 A씨에게 일어났던 일이라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A씨는 채팅을 하다가 자신을 검사라고 소개한 남성을 만났다. 채팅창에 신분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