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평생 책을 끼고 살았습니다.”이수헌(75) 전 칠곡 왜관농협 조합장과 마주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경북 칠곡을 중심으로 한 지역 향토사에 해박하기 그지없다. 지역사에 관한 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수준이다. 어릴 때부터 늘 역사책을 끼고 살았다. 2015년 농협 조합장 3선연임이 충분히 가능했으나 향토사를 공부하고 싶어 선거를 접었을 정도다. 이때 “앞으로 초야에 들어가 텃밭 가꾸고 책에 묻혀 살면서 열심히 일하는 지역 일꾼들이 찾아오면 홍두깨로 칼국수를 만들어 대접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면서
“태어난 곳은 김천이지만 마음의 고향은 군위입니다.”장터해장국은 경북 군위 전통시장에서 가장 먼저 불을 켜는 집이다. 3일과 8일, 장이 들어서는 날도 마찬가지다. 거북이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 시장에 반짝 불이 켜지면 드디어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최순옥 장터해장국(53) 사장은 “2016년에 장터에 식당을 연 뒤 딸 둘 시집보내고, 막내아들 등록금까지 모두 냈다”면서 “군위는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던 고생이 끝난 곳이고 전통시장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맙고 소중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벌건 대낮에도 눈앞이 깜깜하던 시절이었죠”시집
“말이라고 아세요?”군위 전통시장에서 숯불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는 오상경(58)사장은 대뜸 ‘말’이 야기를 끄집어냈다. ‘말’은 연못에서 자라는 수초로 겨울 끝자락, 혹은 초봄에 긴 장대로 걷어와 깨끗이 씻어서 먹는다. 오 사장은 “2015년부터 4년 남짓 시장 상인회 회장을 했는데, 그 사이 방송국 사람들을 몇 번이나 연못에 데리고 가서 촬영해 ‘말’을 전국에 알렸다”면서 “나훈아가 제철에 꼭 찾아 먹는 별미로도 유명하다”고 덧붙였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즈음에 방송국 사람들을 데리고 연못에 가서 말을 따다 보면 귀가 떨어져
경주의 딸 장보윤 ‘천년지애’ 열창경주 출신 트로트 가수 장보윤은 ‘천년지애’ ‘모나리자’ ‘Hot Stuff’ 등의 곡을 열창해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그의 부친이 경주에서 통기타 가수로 활동한 만큼 경주와 무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멘트를 연신 내놓았다. 한곡 한곡 최선을 다해 열창하면서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포항의 딸 전유진 “경주 태풍 피해 빨리 복구되길!”경주의 딸 장보윤에 이어 포항이 낳은 스타 전유진이 등장했다. 전유진은 포항 출신답게 ‘영일만 친구’를 부르며 무대에 나섰다. 시원한 가창력으로
“경주시가 생긴 이래로 가장 큰 공연인 것 같습니다.”천년 고도 경주의 밤을 깨운 힐링과 위로의 축제였다. 공연이 열린 지난달 17일, 경주시민운동장 앞은 점심 즈음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과 팬들로 장터처럼 북적였다. 연신 시계를 확인하고 만나기로 한 지인이 어디쯤 왔는지 통화를 했다. 더디 흐르는 시간에게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리는 듯 여기저기 새된 소리가 터져 나왔고, 누구 할 것 없이 밖으로 쏟아지는 흥분을 도로 삼키느라 뺨이 발그레했다. 60~70년대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경주로 수학여행 온 중학생처럼 설레고 흥분된
백성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때로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관과 주민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한 비유인 듯하다. ‘물’이 ‘배’를 뒤집는 가장 강렬한 계기는 선거다. ‘물’이 발 아래에 믿고 있다가 뒤집히는 ‘배’도 있었고 ‘물’길을 타고 순항하는 ‘배’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지방 자치제가 다시 시행된 이후 2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역의 ‘물’과 ‘배’ 모두 정치적 훈련을 거쳤다. 함께 잘사는 지역을 위해 진정으로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지, 또 주민들은 어떤 리더를 뽑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판단하는
“캄보디아 소녀가 보내준 꽃 한 송이가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어요.” 사공누리(38)씨는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다. 2014년 미술을 공부하려고 노르웨이에 왔다가 남편을 만나 정착했다. 지금은 ‘노르웨이의 사우디’로 통하는 스타 방에르에서 예술가이자 로갈란드(rogaland) 주립미술관의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노르웨이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예술을 펼치는 작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8월에 한국에서 연 개인전에서도 붓글씨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삼베천을 활용한 설치 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노르웨이는 연중
성주군 우체국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한주환(43)씨는 밤에는 소프트테니스(정구) 선수로 변신한다. 그는 선수인 동시에 지도자다. 성주 생활체육공원에서 진행하는 레슨 프로그램의 코치를 맡고 있다. 학생은 15명, 레슨코치는 한 씨를 포함해 3명이다. 문경이나 순천, 충북에도 소프트테니스 동호회가 있지만 선수 출신 코치가 이렇게 많은 지역은 성주뿐이다. 한 씨에 따르면 문경이 ‘정구의 도시’로 통하지만 성주도 그에 못잖다. 지난 7월에 열린 제60회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 성주 소프트테니스팀이 남자 청년부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너무 젊어. 일 제대로 하겠나?”1986년, 40대 초반에 면장(경북 의성군 금성면)이 된 후 여기저기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성군에서 최연소였고, 역사상으로 봐도 가장 어린 면장이었다. 주민들은 물론이고 면사무소 직원들도 회의적인 분위기였다.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청년 모임인 송림동우회였다. 이들은 기대와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금성면 지역의 청년들이 뭉쳐서 결성한 송림동우회는 JC(한국청년회의소)가 질투할 정도로 열심히 또 많은 활동을 했다. 이를테면, 병충해 방제 작업을 하면 송림동우회 회원
‘코로나 블루’를 한방에 날려버린 최고의 음악 축제였다. 7월 2일 오후 6시30분부터 4시간 동안 대구스타디움에서 대구한국일보 주최로 ‘코로나19 극복기원 K-트로트 페스티벌 대구 2022 Power of Daegu’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에는 3만여 명이 운집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신기록을 세웠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 공연에 37도가 육박하는 온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점심 즈음부터 대구스타디움에 몰려들었다. 팬클럽들은 커피차까지 동원해 아이스 커피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중학생 수준 정도 됩니다.”2017년 이만수 전 감독을 도와 라오스국가대표야구팀을 지도했던 권영진 감독의 말이었다. 당시 팀이 창단된 지 4년여가 흐른 즈음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는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이라고 평가를 듣는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라오스 야구팀에 서 들려오는 소식은 늘 희망적이다. 얼마 전 피칭머신을 도입한 것도 그렇다. 라오스 최초다. 라오스국가대표 남자팀과 여자팀을 각각 맡고 있는 민상기(51)감독과 조민규(34)감독이 하루 400~5
두나(29)씨는 2013년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으로 떠났던 언니에게서 급작스런 비보가 들려온 뒤였다. 어머니가 “네가 한국에 가서 언니를 도와야 해!”하고 말했고, 두나씨는 며칠 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갓 태어난 둘째 조카를 돌봤다. 언니는 동생 앞에서 한번도 울지 않았지만,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슬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형부는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4살난 아들과 갓 태어난 딸을 남겨둔 채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결혼식을 할 때 환하게 웃던 형부의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
제자들이 스승이 만든 곡을 반으로 줄였다. 스승은 분노했다. 그러나 막상 제자들 이 ‘칼질’한 음악을 들어보고선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제자들이 다듬은 곡을 이렇게 평가했다.“즐거우면서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가히 아정하다(아담하고 곧바르다) 하겠다.”진흥왕 12년(551)에 신라로 망명한 가야 출신 음악인 우륵의 이야기다. 우륵은 최근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열여덟 임윤찬 군의 인터뷰에 언급 됐다. 언론사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은’ 음악을 염두에 두었으
어머니의 공간“이젠 자랑할 데가 없어요.”오 년 전쯤이든가 머리가 허연 방송인 한 명이 방송에 나왔던 울먹이며 했던 말이다. 어머니는 질투하지 않는다. 자랑하면 자랑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기뻐하고, 아픈 마음을 내비치면 그 말을 한 사람보다 더 깊이 슬퍼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어머니라 부른다. 그 추억이 묻은 곳을 어머니의 땅이라고 한다. 고향이다.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그곳에 없지만, 어머니를 느끼는 공간이다. 그 곳에서 먹고 자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겨자씨 속엔 눈폭풍이 뻐꾹 소리 속엔 먼 산이’최정례(1955-2021) 시인이 쓴 시의 한 대목이다. 시인은 겨자씨를 보면 눈폭풍을 상상했지만 아둔한 보통 사람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지는 않는다. 오래된 사물과 풍경, 처음 보게 된 것이라 해도 애정이 듬뿍 담긴 것들과 무수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우리가 아직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언어를 통한 대화다. 말을 배우면서 이미 버렸다고 생각한 그 원시의 언어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어쩌면 계속 우리 속에 남아 생각과 정서를 향해 말보다 더 강력한 주파수
2007년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에 위치한 대통령궁에 한국 대통령 친인척 한 명이 도착했다. 두 인사가 방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양 측의 경호원들은 복도에서 대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측의 경호원은 건장한 남성 스무 명이었고, 한국 대통령 경호실에서는 여성 경호원 한 명을 파견했다. “꼬맹이네.” “얘가 왜 여기 있어?”키가 이 미터에 가까운 흑인들이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한국 측 경호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 프랑스어 알아들어. 너희들 말 다 들린다.”남자들이
“호중이 말이야, 사람이 변해도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가 있나!”김천예술고 명예교장인 이신화 박사가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건네는 말이다. 이 박사는 ‘트바로티’로 유명한 가수 김호중씨가 김천예술고에 편입할 당시 교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교사로 있던 서수용 김천예술고 교장과 함께 인생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결정적인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 이 박사는 “당시는 그저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는 학생에 불과했는데 지금의 김호중은 한 인간으로서도 너무도 훌륭하게 성장했다”면서 “앞날이 더 기대되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학교를 다닐 당시 김호중
“뉘집 아고(어느 집 자식이냐)?”1980년대 초반, 30반 중반의 청년들이 50~60대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청년이라는 말은 폐기된 용어나 다름없었다. 어른이 아니면 모두 애 취급이었다. “형님, 청년들도 대표 한 명 뽑읍시다. 형님이 나가보십시오.”1980년 말, ‘뉘집 아들(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위원 선거가 있었다. 이듬해 2월에 선거를 통해 1개 읍면에 2명씩 선거로 뽑는다는 공고가 떴다. 주변의 청년들이 나를 찾아와 도전해보라고 했다. 당시 도전장을 던진 사람은 나를
‘행동하는 동네 아줌마’대구 남구 나선거구에 출마에 구의원에 당선된 송민선(56) 의원이 선거 기간에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저 짧은 표현 속에 송 의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송 의원은 25년 동안 외식업에 종사했다. 남구뿐 아니라 대구에 사는 사람들도 식당 이름을 들으면 “아, 거기!”하는 말이 즉각적으로 쏟아질 만큼 인기 맛집이다. 식당에 방문하는 이들 모두 손님이자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소중한 정보원이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다보니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외식업중앙회 대구 남부지부장을 맡은 지
“당선되고 나니까 정치 선배들이 하나같이 ‘네가 될 줄은 몰랐다’고 그래요. 심지어 저를 군위의 후보로 추천한 분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하하!”6·1 지방선거에서 군위군 의원으로 당선된 서대식 의원(47)의 말이다. 상황을 보면 “당선된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정치 선배들의 말이 십분 납득이 된다. 선거운동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19년 동안 개인택시를 운영했다. 평소 정치를 하는 선배들과 교류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기는 했지만 큰 단체의 회장을 맡는 등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한 적도 없었다. 그저 개인택시로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