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작품으로 한살 후배와 듀엣으로 함께 열정을 다해 공연했던 기억이 아 직도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발레리나 김경선(41) 씨는 중소도시 경북 영주 시내에서 3년 전부터 발레학원을 운 영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다소 생소한 분야이지만 “제자들을 가르치고 대학 에 보내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안동대 무용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4년 동안 전국 대학무용제전을 두루 섭렵하면 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졸업 후에는 외국 공연을 통해 더 큰 보람과 무대의 뭉클함 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이제는 고향 영주에 정
“37만 재울 대구·경북 향인들을 대표하는 막중한 자리에 취임하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박해양(63) 백상산업개발 대표이사가 제10대 (사)재울 대구.경북향우회 신임 회장에 취임했다. 박 회장은 “선배들이 키워온 대구.경북향우회를 더욱 알차게 다지고 성장시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겠다”며 “매년 태화강 둔치에서 대구·경북 특산물 축제를 여는 등 다양한 행사 개최와 봉사활동 등으로 재울 향인들의 울산사랑 및 애향심 고취에 힘쓰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울산시 중구 울산시티컨벤션에서 열린 취임식에는 500여명의 향우
5월18일 오후 7시 대구 달서구 장기동 달서아트센터 와룡홀. 209석 규모의 공연장 의 무대 위에 훤칠한 키에 빨간 드레스를 입은 성악가가 올랐다. 무대의 주인공은 바 로 ‘늦깎이’ 메조 소프라노 정미현(27)씨였다. 그는 피아니스트는 이지영씨의 반주에 맞춰 이날오페라 탄 그레디의 아리아인 작곡가 롯시니의 ‘오 나의 조국이여... 이처럼 설레는 가슴(Oh Patria... Di tanti palpiti)’ 등 오페라 곡을 장장 90분 동안 공연했다. 독일어와 영어 등 다양한 외국어로 부른 여러 오페라 곡이 이어진 뒤 정 씨는 관객
“두루뭉술한 공약에 학연과 지연으로 뒤엉켜 정책은 뒤로한 채 공천에 혈안이 돼 있는 비호감선거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의 국민의힘이 압승을 기록한 가운데 20대 청년이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며 일침을 날리고 나섰다. 주인공은 대학생 강사빈(21)씨, 지난 3월 치러진 대구 중·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던 인물이다. 강 씨는 “공천이 당선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느냐”라며 지난 대구시장 경선을 매 몰차게 지적했다. 그는 “학연과 지연, 중앙으로 향해 있는 시선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
경북 안동시 북후면 월전리 권숙자(55)씨가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제 50회 어버이날’기념식에서 효행부문 대통령표창을 받았다.권 씨는 2000년에 귀농해 홀시아버지(84)를 모시고 있다. 특히 그는 자 신도 2차례의 수술받은 암환자이면서 시부의 암투병을 위해 수년간 안동 서 서울의 병원을 오가며 치료와 간병을 하고 있다.권씨는 “가족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상을 받게 되 어 너무 과분하며 부끄럽다”며 “지금처럼 우리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낸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손순희 북후면장은 “
“사람이 한번 태어났으면 저 정도 돼야지!”경북 칠곡에서 세차기 업체를 운영하는 이혜용 한성브라보 대표는 1987년 11월23일 아침에 본 풍경을 잊지 못한다. 서울시 상하수국으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병철 회장의 별세에 그를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 게 듣고 알게 되었다. 그때 속으로 ‘사람이 한평생 살았으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하는 생각을 했다.“그 장면이 너무도 인상 깊게 남았어요. 사업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목표가 되었죠. 그런 꿈을 품은 덕분에 늘
“이거 못 해내면 우리 회사 문 닫는다.”2018년 6월 12일, 대구 달성군 논공읍에 자리 잡은 대한소결금속 생산공장에 화 재가 발생했다. 천장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공장 전체로 번졌다. 그날따라 유난 히 바람이 거셌다. 강풍에 거침없이 덩치를 키운 화마는 철제 구조물에 엉겨붙어 시 커먼 연기를 토해냈다. 화재가 시작될 즈음 김효선(49) 대한소결금속 노조위원장은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장 지붕에서 스멀스멀 배어나오는 연기 를 발견 하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소방대원들을 도와서 물 호스를 붙잡는 등 동분서주하며 애를 태
"안동 촌놈이다!" 김영정(55) 평화산업(주) 노조위원장은 초등학교 6학년 봄에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고향인 안동을 떠나 경북 군위로 전학을 온 날이었다. 안동에서 학교를 다닐 때처럼 책을 보자기에 싸서 둘러메고 등교를 했다. 며칠이나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나서야 고무신에서 운동화로 갈아신고 책가방을 둘러멜 수 있었다. 집안이 가난했던 건 아니었다. 안동에서도 시내와는 거리가 먼 시골이기는 했어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동네에서 어른 대접을 받았고, 군위로 나올 때도 우시장 근처에 있던 방앗간을 사서 이사를 했다. "
“협상의 기술은 모두 골목에서 배웠습니다.”노조원들에게 일곱 번이나 리더로 인정받은 김동준(56) 평화발레오 노동조합 위원 장의 고백이다. 김 위원장은 “각지에서 올라온 가족들이 뒤섞여 도시에 정착하던 그 시절은 냉랭한 도시적 삶과 시골의 정이 공존하던 시대였다”면서 “아웅다웅 다투기 도 했지만 낯선 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았던 골목 풍경이 경제구성원들이 화합해 미 래를 개척하는 모습과 무척 닮아있었단 생각이 종종 든다”고 말했다. 그가 태어난 60년대 중반은 고향을 떠나 도회로 올라오던 시절이었다. ‘응답하라 1988’ 속에 묘사
“휴가를 나와서 곧장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탈영이었죠.” 신상균(79) 칠곡군고엽제전우회 회장은 청룡부대 ‘일진’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다. 1965년 9월28일 베트남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베트남으로 향한 첫 부대였고, 지원이 아닌 차출을 통해 파병 부대를 구성한 만큼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전투부대가 아닌 지원부대 소속이긴 했어도 전쟁터에서 목숨을 100% 보장받는 안전지역은 없었다. 전장에서 총을 쏴 본 적은 없었지만, 43년생인 신 회장에게 전쟁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부산 서면이 고향이었던 그는 피난민들이 국제시장에
“엘리엇 중위의 유해를 찾아서 가족들의 품으로 꼭 보내주세요.” 대통령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2월 18일, 당시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경상북도 칠곡군에 위치한 왜관역에서 선거 유세를 펼칠 때였다. 한 초등학생이 단상에 오르더니 윤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이어 그 학생은 윤 대통령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한국전쟁 때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찾아달라는 얘기였다. 윤 대통령은 그에게 “아저씨가 꼭 찾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게”라며 화답했다. 당시 단상에 올랐던 왜관초등학교 6학년 유아진(12)양은 이미 지역에서 유명 인사였다
“1967년 여름이었습니다.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허연 가루를 뿌렸 는데, 열흘쯤 지나니까 나무며 풀이 벌겋게 변하더군요.”고엽제였다. 베트남 전장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만환(77) 칠곡 군보훈단체협의회 회장에 따르면 본인이 근무한 최전방 방책선 인근 에도 고엽제가 살포됐다. 이듬해에는 병사들이 직접 고엽제를 뿌렸 다. 고엽제를 퍼담을 바가지가 없어서 철모에 고엽제 가루를 담아서 방책선 인근에 뿌렸다. 숲이 벌겋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하 얀 가루가 어떤 폐해를 끼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김 회장의 말 마따나 “아직 한
“철아, 철아, 불쌍한 철아! 일본 가서 부디 몸 성하게 돈 많이 벌고 성공해서 돌 아와라.”아직 동이 트기도 전이었다. 열네살 소년이 혼자서 동구길을 재게 걷고 있었다. 그날 소년은 첫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일본행 관부연락선에 몸을 실을 계획 이었다. 고향의 풍경과 냄새를 가슴이 차곡차곡 개어 넣으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 기고 있는데 느티나무 아래서 “석철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석철’은 소 년이 어릴 적이 쓰던 이름이었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소년은 소 스라치게 놀랐다. ‘혹불할마이’. 마을 사
“우리 엄마 죽인 그놈, 제 손으로 꼭 잡겠습니다.”2012년 즈음, 젊은 경찰관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나에게 “형사계에 지원을 하려 는데 꼭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형사가 되어서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 을 잡으려고 경찰에 입문한 그였다. 이야기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서는 내가 이렇 게 말했다.“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그놈 꼭 잡고 싶다. 미치도록 잡고 싶다!”사건이 일어난 것은 2004년 초여름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휴대폰이 쨍쨍 울어댔 다. 입에서 ‘아이고’ 하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새벽 호출은 뭔가
경북 김천시민들 가운데는 “남면 초곡리에는 슈퍼맨들이 살고 있다”고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며 얘기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60~90대의 어르신들이 각기 다른 농기계 를 몰고 가다 4.5m 높이의 배수로 아래로 떨어졌음에도 중상에서 비켜갔기 때문이다.사고가 잇달아 난 현장은 젊은이라도 생명을 잃거나 치명상을 당할 수 있는 곳. 그 럼에도 불행 중 다행의 결과가 된 것은 “이들 어르신들이 슈퍼맨처럼 공중을 날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유머러스하게 해석들을 하는 것이다. 사고가 연이어 난 곳은 동 김천 IC 인근 포도 하우스 서쪽 측면 차
최명국 전기재료판매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올해로 13년 차를 맞은 베테랑 이사장이 다. 2001년 이사장직을 맡아 8년간 연임 후 2018년에 다시 이사장에 취임했다. 4년 임기를 채우고 올 2월 재선임 된 그는 “부족한 모습이 많지만 지지해 준 조합원들 덕 분에 연임했다”며 “조합원들의 마음을 헤아려 산적해있는 현안들을 해결해나갈 것” 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최 이사장은 1999년 대구종합유통단지 전기재료관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종 합유통단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폭넓은 경험과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전기재료관이 설립
“격리병동에 들어갈 때 입는 레벨D 보호복보다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의 우울감과 불안한 마음이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구태헌(52. 사진) 안동의료원 코로나 전담병동 진료처장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응원해 주신 지역민들이 있었기 에 견딜수 있었다”고 회상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경북으로 덮치기 시작한 2020년 2월20 일 경북도립 안동의료원에도 첫 환자가 입원했다. 안동의료원에는 지금까지 총 3,968 명이 입원했으며, 전원 140명, 사망 103명,
“음악을 때려치우는 건 20대에나 가능한 이야기죠.”음악으로 돈을 번 것도, 길거리에서 사인 요청이 들어올 만큼 유명한 것도 아니다. 실력은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김광석과 두 번이나 무대를 함께했고, 서울에 진출해 음 반을 두 장이나 냈다. 최근에는 김호중과 듀엣 무대에 서기도 했다. 기대한 만큼의 성 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때려치우지 않았다. 가수 김동식(51)은 “음악에 발을 들여놓는 즈음이라면 그만두니 마니할 수 있겠지만, 평생 음악을 해온 사람에게 음악 을 그만둔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뮤지션은 오장육
6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서재준(60)대구북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은 젊은 시 절에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의경으로 복무하면서 워낙 업무에 시달렸던 탓이다. 교통단속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스티커 하나 똑바로 못 떼냐”는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교통 딱지를 떼려고 차를 정차시키면 각자의 사정에 얼마나 마음이 가던지. 그렇 게 한 대, 두 대 계도활동만 하다 보니 함께 나온 경찰들이 안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의경생활을 하면서 경찰만큼은 안하겠다고 마음먹었죠.”그에게 경찰의 길을 권한 사람은 작은아버지였다. 공
“미애씨, 멀쩡한 회사 그만두고 왜 전원일기를 찍으러 가요?”경북 성주군에서 ‘참외 전도사’라고 불리는 김미애(33·농업)씨가 4년 전 귀농선언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 에게 들었던 말이다. 수도권에서 적잖은 연봉을 받던 그는 “현실을 모른다” “몇 년 못 버틸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을 뒤로 하고 부모님이 먼저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성주로 돌아왔다. 김씨가 귀농을 결심한 데는 아버지 김화성(56)씨 영향이 컸다. 전직 억대 연봉의 선박 엔지니어였던 김씨 는 고된 업무 때문에 두 번이나 병원신세를 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