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일짝퉁이 진품보다 판을 치고허울 좋은 거짓이진실보다 더욱 진실해 보이는요지경 같은 세상모르는 바 아니지만보험금 타 먹을 심산으로간단한 접촉사고에 입원한 정형외과환자보다 더 진짜 같은부지기수의 거짓 환자들저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외면된 진실을 동경하지만눈앞의 이익 흔들리지 않을 사람 없듯이보험금 받아서마누라 속내 앓아 십여 년 만새로 장만한 세탁기땀으로
나무는 기다린다천영애청맹과니 여자 숲으로 간다 송충이 한 마리 따라 간다 살아 있는 벌레 숲 캄캄히 눈 내리고 아득히 아득히 눈 내리고밤꽃향기 아득했을 나무 아래 한 생이 사라졌다 땅 속으로 열린 길 청맹과니 여자 지도 펴들고 서성인다 어디로 갈 것인가 소리 들은 잘못이었다 밤꽃 향기 세상에 퍼지고 새끼들 쑥쑥 자라는 소리 들은 죄였다 사랑이면 다거니 마음
개망초-낙동강94윤 일 현서른둘에 홀로 되어아들 하나 키우며 잡초처럼 살다가며느리 들어오자 살림 물려주고툇마루에 앉아 종일 흰 구름만 바라보며어디든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던영천댁 꽃상여 나가던 날칠월 뭉게구름 하늘에서 내려와길가 가득 개망초 꽃으로 흩어졌다하얀 두건 쓴 개망초들바람에 온 몸 흔들며 곡하다가상여를 메고 뒷산으로 올라갔고할머니는 구름이 되어 먼
김윤현하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하나만 하고 돌을 쌓다보면 돌탑이 된다세상은하나가 이루어지면 다른 하나가 고개 드는 곳돌을 쌓아 빈 곳마다 꼭꼭 채우려는 생각 마라다 채우면 틈이 없어 더 외로워진다허공은 텅텅 비어서 더 푸르지 않은가세상은 가득 차지 않아서 살만한 곳하나만 더 하고 쌓다 보면쌓은 것조차 무너지는 것이 돌탑이다잡았다 여겼던 것도 실은 잡은 것이
꽃을 든 아이 - 어떤 졸업식배창환 사랑하는 아이야,꽃을 든 네 사진 보니 눈물이 난다활짝 웃는 네 얼굴에는슬픔이 가득하다눈물도 있다미뤄 둔 시간이 있고유예된 시간이 있다고통을 건너 온 구겨진 길이 있다그 길들이 우우 달려들어네 머리칼 쥐어뜯듯이 달려들어웅크리고 겁에 질린, 너를 낳았구나꽃덩이 같던 네 얼굴엔벌써 굵고
변희수 내가 태어난 날을 물어보면인디언족처럼 엄마는 보리가 팰 때쯤이라고 한다보리가 팰 때쯤이란 말은 참 애매하다보리의 배가 점점 불러올 때나보리의 수염이 까끌하게 자랄 때로 들린다그때 그 보리밭에서 …….이런 우스운 생각을 하다보면보리가 떨군 씨앗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철없이 들뜰까봐언 땅에
김용택 나도 봄산에서는나를 버릴 수 있으리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내리고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좋으리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남은 생도 벅차리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무엇을 내 손에 쥐고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잡아두리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찾아오고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가벼이 내리네삶의 근심
정 숙잡초 무성한 비무장지대 소파에 앉아말은 소음이라며 서로의 입 속에 가둔다내 처용무 속 여자들만울긋불긋 오방색 휘두르며 떠들어댄다그 기원을 먹고 자란 사랑초들이바람의 몸 탐하려 기웃거리는 걸 보며부부가 참, 모처럼 깊은 밤 대화를 나눈다만약에, 우리 만약에 산소 호흡기 꽂아생명 연장은 하지 맙시다나 죽으면 화장해서 뿌릴 건가?아님 선산 어디에 묻어 줄
???????????????????문병란눈썹달이나뭇가지 끝에서작은 새가 되어 날아간다.어제 핀 꽃이오늘 핀 꽃에게부드러운 혀끝을 오무린다산다화 냄새가쎄하니코끝에 와서 간지린다안 되요 안 되요바람이보리밭 속으로 숨는다숨겨 놓은오렌지를 훔치는아도니스의 하얀 손어둠은 살랑눈썹달 끝에서미약을 흘린다. 1935년 전남 화순
그리움에 대하여 - 이건청 산초 열매를 터뜨리면잊혀지지 않으려는그리움처럼,진한 향내가 사람을 감싼다. 아주 먼 곳의산굽이 길 하나가파르르 떨린다.지워지지 않으려는그리움처럼, 며칠 후산초열매 장아찌는식탁에도 오르겠구나,그래, 그래, 우리 모두그리움의 향내아련한 식탁에 앉으리니, 산초 열매여,우리 여생의 길도그리움의 향기 아찔한저 풀 섶 쪽으로아득히, 멀리열려
이달의 시 ‘상(床)을 닦으며’임술랑 상을 닦다 보니당신 얼굴이이 상에 비치는 듯 하오겸상을 하고세상을 건너던 많은 이야기를나누던 상상을 닦다 보니당신 얼굴이 까만 옻칠한 그 속에은은히 새겨져 있는 듯 하오깨끗한 행주로 쓰윽그 얼굴을 훔치니사무쳐 눈물이 가득행주에 머금는 듯 하오당신과 나나와 당신 시인소개 임술랑(사진)
홀로 길 떠나 아무도 없는 허름한 밥집에서 큰 거울을 코앞에 두고 밥을 먹었는데 밥 한 술 가득 입에 넣다가 문뜩 거울을 쳐다보니 괜스레 울컥하며 코끝이 아렸다. 뭐 맨 날 먹는 밥 이걸 또 먹어야 하나, 산다는 게 좀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다가 거울 저쪽의 나는 아무리 보아도 왼손잡이, 나는 영락없는 왼손잡이였다. 거울 속 왼손은 진짜 나의 오른손일 뿐,
가시나무 꽃 정광일 얼마나 절절한 생 아픔인가 발밑 가시를 받아드려 제 몸 흠집 내는 삶의 몸부림 꽃구름처럼 뱉어내는 단말마적 표출인가 진하기만 한 핏빛 목울대 움켜쥐는 처절한 선택 앞에서 생을 선택하며 웃어야만 하는 가시나무의 꽃피움 삶이란? 가시밭길 밟으며 아슬아슬 여물어간다는 걸 안 것인가 시인 소개 정광일 시인은 1954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현재
입시 전선 이웃 없다 짝꿍부터 이겨야 한다 교실에서 시작된 구호가 이제는 형만 한 동생 없다 스승만 한 제자 없다. 놀부시대 구호도 가지가지 스승을 이기려는 제자들이 여기서 저기서 줄서기 재주가 미제이다 의리보다 실리를 신가루지기 타령이 명약 팔기에 신명이 났다. 놀부는 질색이지만 나는야 흥부 사촌도 별로 흥미 없어 단심가 흉내 내며 알아주지 않는 일편단심
과민한 걸까 뜨거운 그를 아픔이라 한다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그가 순간 왔다 영영 가면 아파 펄펄 끓는데 고장일까 내가 가슴앓이 말라며 얼굴 펴고 살라며 흔적 남기고 떠난 그를 잊을 수는 있을까 눈물로 보냈지만 추억으로 남은 그는 항체일까 항원일까 권순학은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공업
‘말하는 대로 이루는 새해를 맞으라’는연하장을 벌써 받는다.말(馬)의 해를 맞았으니말(馬) 하는 대로 이루는 것이말(言)하는 대로 이루는 것이다.말(馬)과 말(言)이 닿는 대로,말(馬)과 말(言)이 달리는 대로,말(馬)과 말(言)이 꿈꾸는 대로이루는 새해를 기원한다.말(馬)이 푸른 해이므로말(言)도 푸르러질 것이다.말(馬)과 말(言)이 싱그러워지면우리 삶도